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리국칼럼

강남중 기자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미국에도 낙하산 인사와 특혜가 있을까?

미국에도 낙하산 인사와 특혜가 있을까?



# 워싱턴 부동산업자들이 들떠 있는 이유

아마 지금쯤 워싱턴 지역의 부동산 업자들은 새로 맞을 고객들로 가슴이 부풀어 있을 것이다.

올 겨울, 워싱턴에는 4년 만에 대규모 이사 바람이 예고돼 있다. 11월 치러진 대선에서 트럼프의 낙선이 확정된다면 수천 명의 연방 정무직 공직자들과 그 가족들이 보따리를 싸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들의 측근이, 그리고 취임 후에는 정무직 공직자들이 대형 트럭을 몰고 워싱턴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4년마다, 때론 8년마다 겨울에 찾아오는 이 난데없는 이사바람이 워싱토니언들에겐 이미 익숙한 절차가 되어 있다.



# 대통령의 인사권

백악관의 주인은 막강한 인사권을 갖는다. 우선 대통령은 연방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하는 차관보(Assistant Secretary)급 이상 행정부 인사, 연방 독립기관의 보드 멤버와 각종 정책자문기구들의 위원을 임명한다.

전 대통령에 의해서 임명된 장관(Secretary), 부장관(Deputy Secretary), 차관(Under Secretary), 차관보(Assistant Secretary), 실국장(Deputy Assistant Secretary) 등 약 1,400명의 행정부 고위직들이 교체대상이 된다.

또 연방 정부 내에 장관이나 다른 부처의 책임자에 의해서 임명된 정무직 공무원(Schedule C Employee)들도 바뀌게 된다. 총 6천 명가량의 고위 공직자들이 교체되는 것이다. 물론 공무원 공개채용 과정을 거쳐서 임명된 약 200만 명의 연방 공무원들은 신분 보장을 받는다.

외국에 파견되는 대사직도 대거 물갈이 된다. 미국을 대표해 각국에 파견되는 대사 하면 국무부의 직업 외교관들이 맡을 것 같지만 실제는 2/3정도에 그친다. 나머지 1/3은 새로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임명해온 게 관행이었다. 정무직 외교관으로 임명하는 것이다.


# 트럼프 4천여명 물갈이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취임에 앞서 뉴욕타임스가 트럼프 호에 승선할 물갈이 공직자를 분석한 보도를 내놓은 적이 있다.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정권이 바뀌면서 물갈이 되는 공직 수는 4천115개였다.

첫째는 트럼프가 취임 전에 직접 임명해야 하는 자리가 1천579개다. 이중 장관과 부장관, 대사, 미군 수뇌부 등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하는 정무직이 1천54명이며, 나머지 525명은 상원 인준이 필요 없이 트럼프가 바로 기용할 수 있는 백악관 보좌진이다.

둘째는 연방 행정부의 국장급 이상을 포함한 고위직 680명이다. 이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지는 않는다.

셋째는 정책 전문가, 특별자문 역 등 정부의 정책결정이나 고위직의 사무를 돕는 사람들도 1천392명이 있다.
넷째는 기타 정부 직책으로 464명가량 된다.




# 낙하산 인사=회전문 인사

이 같은 물갈이는 비단 연방 정부뿐만이 아니다. 50개 주 정부와 그 안의 지방정부에서도 주지사나 카운티 수퍼바이저(일종의 군수) 등 수장이 선거를 통해 새로 선출되면 똑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새로운 주지사가 적어도 1천명 안팎의 정무직 공무원들을 새로 임명하는 것이다.

이 ‘낙하산 인사’를 워싱턴에서는 ‘회전문(revolving door)’이라고 부른다. 회전문 인사는 대통령 선거의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관행에서 비롯된다.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면 새로운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수행하고 관료 통제를 위해 정치적으로 고위직들을 임명하는 것이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당선되자 그의 출신지인 조지아 사단이 백악관과 정부를 장악했고, 빌 클린턴은 아칸소 사단이,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되자 텍사스 사단이 요직을 장악했다.

그러기에 아무도 낙하산 인사 자체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지 않는다. 이는 국정 추진력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어차피 정권교체가 된 만큼 통치를 위임 받아 국정을 담당할 사람들도 새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에 맞는다는 논리 때문이기도 하다.


# 선거와 돈의 관계

그러니 선거에 나서려는 후보가 선거자금 확보에 얼마나 목을 맬 수밖에 없을지 짐작이 간다. 더군다나 연방 하원의원이나 주 하원의원 등 대다수의 선출직의 임기는 2년이다.

그러다보니 선거가 끝나면 바로 다음 해 선거 운동을 해야 한다. 2년 임기 내내 모금 파티(Fundraising Party)에 쫓아다니고 돈이 될 만한 행사나 단체 모임에 불려 다닌다. 그러니 정치인은 후원금에 살고 후원금에 죽는다는 말이 나온다.

연방 의회에서 보좌관으로 오래 일한 K씨는 선거와 돈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선거라는 게 돈하고의 싸움입니다. 임기 내내 어떻게 하면 돈을 모을까 궁리하는데 드는 시간이 의정활동에 쏟는 시간보다 더 많다고 하면 믿을까요?”

이런 정치인들에게 선거자금을 내는 사람들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우는 것일까. 천만에 말씀이다. 물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소액 기부자들도 많다. 자신의 이념과 가치를 대신해 실현시켜줄 후보를 위해 주머니를 털어 보내는 선량한 시민들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후원금은 그냥 공짜 ‘후원’이 아니다.




# 모금파티의 속사정

2020년 11월에 치러질 버지니아 주의 선거를 앞두고 모 후보가 모금파티를 열었다. 변호사인 그는 지역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중진 현역의원이었다.

그의 파티에 오라는 초청장이 발부됐다. 무차별 뿌려지는 게 아니다. 그 파티를 주관하는 측에서 자신들의 돈 많은 지인이나 속칭 돈을 낼만한 인사들에게 연락하는 것이다. 그날 밤 파티에는 50여명이 참석했다. 대부분 그의 관내에서 스몰 비즈니스나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이었다. 주최 측은 정확한 모금액은 밝히지 않았지만 풍문으로 몇 만 달러가 모였다고 한다.

물론 그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몇 번 더 모금 파티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제법 두둑한 후원금을 냈다고 얼굴 도장을 찍을 필요성이 있는 사람들이 또 몰려들 것이다.
파티가 끝나고 얼마 뒤에 참석자들은 그 의원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 편지를 기대하는 게 아니다.

만약 어떤 건물 공사를 하는데 규제에 막혀 애를 먹는다면 그 의원에게 전화가 갈 것이다. 만약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려는데 정책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또 그 의원에게 연락이 갈 것이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청탁이다.

그러면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난제는 손쉽게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그런 많은 사례를 목격하고 들었다.

모금 파티에 참석하는 비즈니스맨들이 내는 후원금은 일종의 보험이다. 내가 도와줬으니 너도 날 도와야 한다. 그것이 선거의 룰이다. 선거에 자금을 대주고 그 대신에 특혜를 받는 공공연한 거래인 것이다.

미국 정치의 이면에는 돈과 대가의 함수관계가 숨어 있다. 공생의 법칙이 이 정치판에 작동된다. 선거자금은 ‘합법적 뇌물’이다.


# 후원금 기부자들을 위한 자리
특혜만이 아니다. 좀 더 큰 ‘정치 시장’에서는 달콤한 자리가 거래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유엔 주재 대사 자리에 외교 전문가가 아닌 켈리 K 크래프트(57)를 지명했을 때 놀란 미국인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광산업으로 돈을 번 억만장자인 ‘공화당 큰손’의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대선 당시 크래프트 부부는 트럼프 캠프에 최소 200만달러를 기부했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보도였다.

트럼프는 대선 자금의 돈줄들에게 요직을 나눠졌다. 대사직만 해도 30% 관행을 무시하고 45%나 고액 정치후원금 기부자들로 채웠다.

물론 정부 내의 ‘짭짤한 자리’에도 선거 캠프 출신들이 차고 들어갔다. 그 중에는 한인도 있다. 제이슨 정(한국명 정명익)씨가 백악관이 임명하는 아시아 개발은행(ADB) 미국측 대표 이사로 발탁된 것이다. ADB 미국 측 집행이사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사급 고위 정무 직이다.그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활동했으며,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아태 담당 공보국장으로도 활약했다.

이에 앞서 오바마 정부 시절에는 데이빗 김 씨가 연방 교통부 차관보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 역시 대선 당시 민주당 진영에서 참모로 활동했다.


# 오바마도 고액 기부자 수백명 ‘특채’

트럼프만 특별히 ‘나쁜 대통령’은 아니다. 전임인 버락 오바마도 2011년 대통령에 취임하자 거액의 정치자금 기부자들에게 자리를 나눠졌다.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의 보도는 5만 달러에서 50만 달러까지의 기부자들이 어떤 특혜를 받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거액의 기부자 중 거의 200여명이 아주 근사한 정부의 요직이나 각종 위원회의 자리를 차지하거나 자신들이 운영하는 기업이 연방 정부로부터 거액의 계약을 따냈고, 백악관에서 열리는 수많은 모임이나 사교행사에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오바마의 선거자금 모금활동에 앞장 선 인사들과 그 배우자 556명 가운데 3분의 1인 184명이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정부 내에서 역할을 했다. 물론 대사직에 지명된 사람도 24명이나 됐다. 그 중 14명은 50만 달러 이상의 정치자금을 모은 사람들이었다.
폴리티코는 꼬집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당시에 재력을 바탕으로 한 집단의 영향력을 줄이겠다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했지만 결국에는 거액의 기부자들에게 상당히 의지했으며 이들 정치자금 모금자들 중 상당수는 ‘승리의 전리품’을 공유했다.”

미국 정치제도가 공정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권력과 자본의 공공연한 유착관계가 드러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선거에서 도와준 사람들을 알뜰히 챙기고 끼리끼리 해먹는다.
특혜와 보은 인사, 이 모순이 바로 정치의 민낯이며 민주주의의 함정이다.

특혜 없는 세상은 없다. 아무리 공정사회를 외쳐대도 불평등한 인간사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