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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국칼럼

강남중 기자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그는 왜 미국에 바짝 낮췄을까: 역대 대통령의 방미 일화 5 노무현

그는 왜 미국에 바짝 낮췄을까: 역대 대통령의 방미 일화 5 노무현


“나는 북한을 그렇게 많이 신뢰하지는 않는다.” <뉴욕타임스 회견>

“53년 전 미국이 우리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지금쯤 혹시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만찬연설서>

처음 워싱턴에 오는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과 미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워싱턴 방문 전에 들른 뉴욕에서 그의 화법은 종전의 그가 아니었다. 북한 체제를 겨냥한 민감한 발언에다 미국에 ‘아첨’에 가까운 발언도 쏟아냈다.


왜 그랬을까. 2000년대 초반 한국민의 반미감정은 더없이 높아져 있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등 미국의 오만한 태도는 민족적 자존감이 높아진 한국민의 반미감정을 부추겼다.

성조기가 불타고 '양키 고우 홈' 목소리가 드세졌다. CBS는 시사프로그램인 '60Minutes'에서 한국의 반미 감정을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동시에 미국 내에서 한국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이 한껏 높아졌다.

.반한 감정이 팽배해지고 노무현 새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도 점증해갔다. 게다가 미국은 산전수전 다 겪은 DJ도 무시한 부시가 여전히 대통령이었다.

노무현은 이제 투사나 야당 정치인이 아닌 한국의 대통령이었다. 5천만 대한민국의 생존이란 책임감이 그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한반도에 미치는 힘의 역학관계를 완벽히 이해 못하면 그는 한 나라를 이끌 자격이 없는 철부지나 다름없었다.
스스로의 힘을 정확하게 성찰하고 감정과 자존심을 내려놓는 데서 외교와 국익이 시작되는 것임을 노무현도 안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워싱턴으로 오면서 자신에 대해 미덥지 않고 불안해하는 미국 조야에 사전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나,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야."

# 앤드류스 공항에 내리다
2003년 5월13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뉴욕을 출발, 오전 9시22분 워싱턴 근교의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내렸다.

공군 의장대가 도열한 공항에서는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한승주 주미대사, 한병길 총영사 그리고 이오영 미주한인회총연합회장, 김영근 워싱턴한인연합회장, 강남중 북버지니아, 손순희 수도권메릴랜드한인회장, 김영진 평통 회장이 부부동반으로 대통령을 따뜻하게 맞았다.

한미 양측 인사들과 악수를 나눈 후 노 대통령은 대기해있던 리무진에 타, 숙소인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로 이동, 여장을 풀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 등 2박3일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 리셉션장은 왜 그리도 더웠을까
노 대통령과 워싱턴 동포들이 처음으로 만난 간담회는 백악관 인근의 캐피탈 힐튼호텔에서 오후 5시30분부터 약 45분에 걸쳐 진행됐다.

행사장은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은 1천명이나 참석해 무질서하게 보일 정도였다. 실내의 공기가 더워지자 땀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행사는 대통령 입장, 화동(花童)들의 꽃다발 증정, 동포 대표인 김영근 워싱턴 한인회장의 환영사, 대통령 말씀, 김영진 평통 회장의 제의에 따른 건배로 끝을 맺었다.

노 대통령은 원고 없이 22분간 자신의 국정운영 철학과 한미 현안, 재외동포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유머를 섞은 논리 정연한 입담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노 대통령은 “한국에서 떠날 때는 걱정이 한 보따리였는데 오늘까지 일이 잘 풀려 성공적이었다”며 “이는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미국 동포 분들의 노고가 뒷받침된 것”이라고 동포들에 감사를 표했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한미동맹 강화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의 경우 미국의 영향력이 작동않는 동북아질서 유지가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안다“며 "미국도 동북아에서의 유대가 필요한 만큼 이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끼리 가슴을 열고 만나 이야기하면 신뢰가 쌓이고 좋은 관계가 만들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낙관론을 폈다.

특히 노 대통령은 한국내의 반미기류에 대해 언급,"촛불시위로 (동포 여러분이) 겪은 어려움을 잘 안다“며 "귀국하면 그와 같은 일로 국가간 어려움과 동포들의 처지가 힘들어지지 않게 (국민들을) 각별히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이라크전 파병에 대해서 "파병결정 당시 갈등이 많았다”고 털어놓은 후 "미국에 와서 동포 여러분이 이렇게 사는 걸 보고 파병은 대단히 중요한 결정이고 잘한 것이란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반미문제 등 재미동포들의 당초 우려와는 달리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연설을 채워 열기를 이끌어냈다.


# 디지털 카메라 모델 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함께 행사장 앞쪽의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후 다음 행선지로 떠났다. 이후 참석자들은 뷔페식 만찬을 들며 환담을 나누었다.

이날 리셉션은 시대의 변화상도 실감케 했다. 참석자들의 상당수가 디지털 카메라를 지참해 경쟁적으로 노 대통령을 찍어댔다. 과거 같으면 경호 문제로 어림도 없던 일이었다. 참석자들은 “권위주의 시대가 가긴 갔나 보다”고 한마디들씩 했다.

특히 지난 16대 대선 당시 노 대통령의 컬러였던 노란색 손수건이 등장, 행사장 분위기를 한껏 달궜다. 노사모 회원 수십명은 노 대통령이 입장하자 노란 손수건을 흔들며 노무현을 연호, 마치 대선 열기가 재현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헤드테이블에는 노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김진표 경제부총리, 윤영관 외교장관, 한승주 주미대사 등 한국측 인사들과 김영근 워싱턴한인연합회장, 강남중 북버지니아․손순희 수도권메릴랜드한인회장 부부가 동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