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지 않으면 서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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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다주 사막에 서 있는 나바호 인디언 교회.[/caption]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지 않으면 서지 못한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말입니다.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하여 묻자, 공자님은 “정치란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넉넉하게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民信)”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자공이 “부득불 이 가운데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포기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묻자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며, “자고로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民無信不立)”고 대답했습니다. 경제나 국방에 앞서는 게 바로 국민의 신임을 받는 것임을 강조한 말입니다. 김영삼 대통령도 언젠가 이 문구를 새해 휘호로 선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모두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사회의 최소단위라 할 수 있는 가정도 가족들 간의 신뢰에 근거해서 건전하게 유지되고, 일반사회의 모든 조직과 제도, 한 국가도 신뢰를 바탕으로 존립합니다. 비근한 예로, 신호등의 체계를 믿지 못한다면 특히 교차로에서 얼마나 불안할까요. 이발사에게 목을 맡기는 것, 보험 드는 것, 은행에 예금하는 것 등등 일상사의 모든 일들이 다 신뢰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고 맡긴다’고 해서 신탁은행(信託銀行)과 신탁통치라 하며, 신용조합이나 신용카드 역시 신뢰와 신용을 그 저변에 깔고 있는 명칭들입니다. 몇 년에 한 번 치르는 선거도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 또한 신뢰를 바탕삼아 행해지는 정치행위입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려니 믿고 뽑아주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 이민와서 처음부터 신용(credit) 문제에 맞닥뜨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사야 하는데 크레딧을 쌓아놓은 게 없으니 다른 분의 신용을 빌려 연대보증으로 구입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자니 자연히 이자율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외에도 생활의 모든 영역이 신용과 연결돼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은행에 목돈이 예치되어 있는 것보다 매달 집세나 크레딧카드 페이먼트를 꼬박꼬박 잘 낸 실적이 더 높이 평가되기도 합니다. 미국 화폐에는 ‘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IN GOD WE BELIEVE’ 라고 하지 않고 ‘TRUST’라는 단어를 쓴 것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자녀가 높은 곳에서 아버지를 신뢰하고 뛰어내리는 것에 견주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어린 자녀가 분명히 자기 아버지인 것을 ‘믿지만’ 그 아버지가 자기를 안전하게 받아줄 것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감히 뛰어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는 많이 있지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 분의 신실하신 성품입니다. 신실함은 영어로는 faithfulness 또는 trustworthiness인데, 한 마디로 ‘믿음직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안심하고 우리 자신을 맡길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입에서 내신 말씀은 반드시 실행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결코 식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동서양이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느낌을 줄 때가 많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식언(食言)’이라는 표현입니다. 자기가 한 말을 후회하거나 실행하지 않거나 번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영미권에서도 ‘eat one’s words’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게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말씀을 반드시 그대로 지키시는 분이기에 우리가 그 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것은?”이라는 넌센스 퀴즈가 있는데, 그 답은 “거짓말하시는 것”입니다(히브리서 6:18).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저는 믿음의 분량을 ‘맡김의 정도’로 측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철석같이 신뢰하면서 그 분께 많이 그리고 쉽게 맡길 수 있는 자는 믿음이 있는 자일 것입니다. 이렇게 맡길 수 있는 자가 굳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 맡긴다.”는 말이 있고, 서양 속담에는 “여우에게 양을 맡긴다(set the wolf to guard the sheep.)” 또는 “여우에게 닭장 맡긴다(have the fox guard the henhouse)”는 비슷한 속담들이 있는데, 물론 믿지 못할 자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니시기에 어떤 중요한 일도 내어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무신불립(無信不立)’을 거의 문자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사야 7장은 남왕국 유다의 아하스 왕 때 있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통치하고 있던 시대에 아람 왕과 북왕국 이스라엘 왕이 동맹을 맺고 연합군을 결성하여 예루살렘에 쳐들어오자 아하스 왕은 두려워서 사시나무 떨 듯이 공포에 질려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자지를 보내어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은 기껏해야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며 마침내 그들의 도모(圖謀)가 서지 못할 것이요 궁극에는 둘 다 멸망하게 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굳게 믿어야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7:9)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우리도 이런저런 일로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 당황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 굳게 서서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지 않으면 서지 못한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말입니다.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하여 묻자, 공자님은 “정치란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넉넉하게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民信)”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자공이 “부득불 이 가운데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포기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묻자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며, “자고로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民無信不立)”고 대답했습니다. 경제나 국방에 앞서는 게 바로 국민의 신임을 받는 것임을 강조한 말입니다. 김영삼 대통령도 언젠가 이 문구를 새해 휘호로 선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모두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사회의 최소단위라 할 수 있는 가정도 가족들 간의 신뢰에 근거해서 건전하게 유지되고, 일반사회의 모든 조직과 제도, 한 국가도 신뢰를 바탕으로 존립합니다. 비근한 예로, 신호등의 체계를 믿지 못한다면 특히 교차로에서 얼마나 불안할까요. 이발사에게 목을 맡기는 것, 보험 드는 것, 은행에 예금하는 것 등등 일상사의 모든 일들이 다 신뢰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고 맡긴다’고 해서 신탁은행(信託銀行)과 신탁통치라 하며, 신용조합이나 신용카드 역시 신뢰와 신용을 그 저변에 깔고 있는 명칭들입니다. 몇 년에 한 번 치르는 선거도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 또한 신뢰를 바탕삼아 행해지는 정치행위입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려니 믿고 뽑아주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 이민와서 처음부터 신용(credit) 문제에 맞닥뜨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사야 하는데 크레딧을 쌓아놓은 게 없으니 다른 분의 신용을 빌려 연대보증으로 구입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자니 자연히 이자율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외에도 생활의 모든 영역이 신용과 연결돼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은행에 목돈이 예치되어 있는 것보다 매달 집세나 크레딧카드 페이먼트를 꼬박꼬박 잘 낸 실적이 더 높이 평가되기도 합니다. 미국 화폐에는 ‘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IN GOD WE BELIEVE’ 라고 하지 않고 ‘TRUST’라는 단어를 쓴 것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자녀가 높은 곳에서 아버지를 신뢰하고 뛰어내리는 것에 견주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어린 자녀가 분명히 자기 아버지인 것을 ‘믿지만’ 그 아버지가 자기를 안전하게 받아줄 것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감히 뛰어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는 많이 있지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 분의 신실하신 성품입니다. 신실함은 영어로는 faithfulness 또는 trustworthiness인데, 한 마디로 ‘믿음직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안심하고 우리 자신을 맡길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입에서 내신 말씀은 반드시 실행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결코 식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동서양이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느낌을 줄 때가 많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식언(食言)’이라는 표현입니다. 자기가 한 말을 후회하거나 실행하지 않거나 번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영미권에서도 ‘eat one’s words’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게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말씀을 반드시 그대로 지키시는 분이기에 우리가 그 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것은?”이라는 넌센스 퀴즈가 있는데, 그 답은 “거짓말하시는 것”입니다(히브리서 6:18).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저는 믿음의 분량을 ‘맡김의 정도’로 측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철석같이 신뢰하면서 그 분께 많이 그리고 쉽게 맡길 수 있는 자는 믿음이 있는 자일 것입니다. 이렇게 맡길 수 있는 자가 굳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 맡긴다.”는 말이 있고, 서양 속담에는 “여우에게 양을 맡긴다(set the wolf to guard the sheep.)” 또는 “여우에게 닭장 맡긴다(have the fox guard the henhouse)”는 비슷한 속담들이 있는데, 물론 믿지 못할 자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니시기에 어떤 중요한 일도 내어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무신불립(無信不立)’을 거의 문자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사야 7장은 남왕국 유다의 아하스 왕 때 있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통치하고 있던 시대에 아람 왕과 북왕국 이스라엘 왕이 동맹을 맺고 연합군을 결성하여 예루살렘에 쳐들어오자 아하스 왕은 두려워서 사시나무 떨 듯이 공포에 질려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자지를 보내어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은 기껏해야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며 마침내 그들의 도모(圖謀)가 서지 못할 것이요 궁극에는 둘 다 멸망하게 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굳게 믿어야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7:9)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우리도 이런저런 일로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 당황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 굳게 서서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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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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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1 |
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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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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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9 |
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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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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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8 |
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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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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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7 |
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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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0 |
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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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