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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여호와 신앙에 ‘중용’은 없다!



구약성경에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이 여덟 번 등장합니다.
문자 그대로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벗어나지 않고 오직 큰길로만 통행하겠다”는 의미로 사용된 예도 있습니다. 신명기 2:27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할 때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통행을 허락받기 위해 한 평화의 메시지로서, 단순히 지리적 방향을 의미할 뿐입니다. 또한 판결이나 지시를 어김없이 시행한다는 뜻으로 사용된 용례들도 있습니다(신명기 17:11, 사무엘하 14:19).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의 말씀이나 율례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직 그 길로만 올곧게 걸어가는 신앙의 지조를 표현하는 히브리적인 관용구(慣用句)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치 농경사회인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복을 ‘이른 비와 늦은 비’로 표현하듯이 그들만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하나의 관용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는 극단을 피하고 중도노선을 지향하는 ‘중용지도(中庸之道)’와는 문맥상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러한 용례(用例)로 사용된 나머지 다섯 구절을 살펴보면 너무나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5:32-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道)를 행하라.”
(신명기 17:19-20) “(율법서를)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신명기 28:14)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여호수아 1: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여호수아 23:6)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이상 인용한 구절들의 문맥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복과 관련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여호와 유일신 신앙에서 벗어나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던 토착 신들에게 눈길을 보내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함으로써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곤 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여호와 신앙을 완전히 버렸던 적은 없습니다.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과 이방신들을 함께 섬겼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농경사회에서 풍요와 다산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아스다롯)는 정말 떨쳐버리기 힘든 매력적인 신들이었으며, 이 신들을 자극하기 위해 남녀가 어울려 질펀하게 음란한 굿판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으로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있었기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양다리 걸치며 다양한 보험을 들어놓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며, 어떤 우상의 형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면서 스스로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던 여호수아는 만년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상기시켜주면서 마치 유언처럼 절절한 심정으로 여호와 신앙에 굳게 서있을 것을 촉구합니다.

(여호수아 24:14-15, 20)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는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가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한 눈 팔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올곧게 걸아가면서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유일신 신앙에는 중도란 없습니다. 요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절대적인 것을 거부하는 추세에 편승해서 종교다원주의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왜 기독교만 구원의 종교냐? 다른 종교들을 통해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지 않는가? 그래서 소위 ‘만만주의’가 배격되고 ‘도도주의’가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변개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변할 수 있는 것들과 변하지 않는 것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한 가지 유념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자칫 흑백논리에 빠져 흑과 백 사이에 다양한 회색의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 좌익과 우익, 진보와 보수, 개인구원과 사회복음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 철학과 유교에서 양극단을 지양하면서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적정한 중간(Golden Mean)’을 취하려는 자세는 갈등을 피하는 지혜로운 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호와 신앙에 있어서는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는 옳지 않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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