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복된 나라, 복된 민족



미국의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은 1776년 7월 4일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만방에 선포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차제에 미국 역사를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면, 중세시대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붐이 일어났을 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이탈리아인이었지만 동방 땅인 인도에 가서 금을 캐오겠다고 스페인 여왕 이세벨을 설득해 스페인의 후원을 받아 신대륙 탐험에 나서게 되었고, 비록 반대 방향으로 가는 실수를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1492년 10월 12일에 지금의 바하마 군도의 한 섬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섬 이름을 산살바도르(거룩한 구세주)라고 붙였고, 그 섬이 인도에 속한 땅으로 착각한 나머지 그 원주민들에게 인디언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서방 국가들이 앞다퉈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네덜란드 출신의 헨리 허드슨이라는 탐험가는 지금 뉴욕주의 한 강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허드슨 강입니다. 그리고 뉴욕시 일대를 네덜란드의 수도 이름을 따서 뉴암스테르담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들 후손 가운데 루즈벨트(Roosevelt) 대통령이 나오게 되었고, 그래서 미국인들은 네덜란드식으로 로우즈벨트라고 발음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친 영국이 승승장구하면서 그 여세를 몰아 여러 지역에 진출하여 식민지를 개척하는 중에 드디어 아메리카 대륙에도 손길을 뻗치게 됩니다. 영국은 1607년에 버지니아에 제임스타운이라는 정착촌(settlement)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북미주 땅에서 영국이 개척한 최초의 식민지입니다.

이 식민지는 그 당시 미혼이었기 때문에 ‘Virgin Queen'으로 불렸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름을 따서 Virginia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버지니아는 ’Birth Place of the Nation‘(미국의 탄생지)이라고 불리어지기도 합니다. 그 후 챨스 2세에 의해 ’Old Dominion‘으로 명명되었고, 지금까지도 이것이 버지니아주의 별명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버지니아주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주이기 때문에 좀 더 설명을 보탠다면, 버지니아주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별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여덟 명의 대통령을 낸 주이기 때문에 ’Mother of Presidents‘라는 별명도 있고, 이 주에서 후에 여덟 개의 주가 나뉘어졌다고 해서 ’Mother of States‘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Kentucky, Massachusetts, Pennsylvania와 함께 오직 4개의 주만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Commonwealth‘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버지니아주는 ’Commonwealth of Virginia‘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이 명칭은 공동선과 공공복지(common good and public welfare/well-being)를 지향하는 민주공화정 체제의 자치정부를 의미하는 자랑스러운 호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 이민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은 청교도들(Puritans)의 이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20년 102명의 영국 청교도들이 66일간의 항해를 거쳐 마침내 현재의 매사추세츠주인 잉글랜드 남서부 플리머스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들이 ‘Pilgrim Fathers’이며, 사실상 미국 건국의 조상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목적은 한 마디로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영국의 헨리 8세는 로마 가톨릭에서 금하는 재혼을 위해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교회(Anglican Church) 즉 성공회를 설립하고 스스로 교회의 수장이 됩니다. 형식상으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뛰쳐나갔으니 저항자(Protestant)라고 할 수 있겠으나 내용상으로는 다른 나라들의 개신교에 비해 여전히 가톨릭적인 요소들을 많이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감을 가진 자들 가운데 영국 교회에서 가톨릭적인 요소들은 정화할(purify)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가리켜 청교도(Puritan)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핍박이 심해지자 드디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행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플리머스에 도착하기 전에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을 하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증진하겠으며 모든 사람들이 잘 사는 정의롭고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일에 힘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신이 미국 건국의 기초와 철학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비록 청교도 정신이 많이 흐려지긴 했지만 그 기본정신은 변하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청교도들은 신대륙에 와서 제일 먼저 교회당을 짓고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근검절약하면서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서서히 문제가 생겼습니다. 영국이 식민지 미국에게 세금을 내라는 부당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기에 맞서 그들은 “대표 없이는 세금도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고 표방하면서 영국의 부당한 처사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보스톤 대학살’(Boston Massacre)이라는 무력충돌과 유명한 ‘보스톤 티 파티’(Boston Tea Party)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불만은 급기야 미국 독립전쟁(American War of Independence, American Revolutionary War)으로 비화되었습니다.



미국 동부 해안 13개주가 연합해서 1775년부터 8년 동안 영국과 맞서 싸웠고, 그 과정 속에 프랑스가 미국 편에 가담하면서 전세가 불리해진 영국은 결국 1783년 파리조약에서 미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됨으로써 독립전쟁이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전쟁이 발발하기 한 해 전에 이미 미동부의 13개 주가 모여 1776년 7월 4일 역사적인 독립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아메리카 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 USA)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독립선언문의 내용 중 우리가 주목할 만한 내용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법 앞에서 평등하게 지음을 받았으며,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일 것입니다.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사람들 중 리더격인 토마스 제퍼슨은 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철저한 기독교 신앙이 이 독립선언문에도 많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비결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앞세우는 기독교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나라와 백성이 복을 받을 것이라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시편 33: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 칼럼의 내용은 본 신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