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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살아있음에 감사

살아있음에 감사



감사의 달 11월을 보내면서 ‘나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일들을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나의 지나온 생애를 돌이켜보면 원망스럽고 섭섭한 일들, 슬픈 사건들, 힘든 순간들도 많았지만, 감사할 일도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비교적 불우한 환경에서 자칫 빗나갈 수도 있었지만, 오늘까지 크게 탈선하지 않고 나름 성실하게 살아온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곧은 믿음으로 저를 바른 길로 가도록 울타리 역할을 해 준 아내, 목사의 자녀로서 남다른 중압감으로 인해 빗나갈 수 있는 환경에서도 말썽부리지 않고 바르게 자라준 두 아들, 갖은 역경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한 교회에서 30년간 장기 사역하다가 대과 없이 은퇴하고 원로목사로 세움을 받은 은혜, 칠순을 넘은 나이에도 배우고 가르치고 일할 수 있는 건강, 하나하나 꼽아보면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이 천지빼까리입니다.

요즘에는 ‘나에 대한 감사 100가지’를 쓰는 프로그램도 있고, 자서전을 쓰는 세미나도 자주 보게 됩니다. 나에 대하여 감사할 일이 100가지나 될까 싶지만, 기억을 되살려 하나하나 차근차근 써내려 가다 보면 100가지 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놀라는 자들도 많다고 합니다. 저는 당장은 ‘나에 대한 감사 100가지’를 다 정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저 우선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은 일들만 몇 가지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로 생각나는 것은 초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던 것은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제가 사는 시골 동네에 제법 큰 강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물에 들어가 놀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모래 급경사에 발이 닿는 순간 쭉 미끌어지면서 몸의 균형을 잃고 물속으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물살이 세지 않은데 비가 온 후라 물살이 제법 세었고, 게다가 물살이 세어지면서 물 아래 지형이 바뀌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쥐도 새도 모르게 영락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멀리서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한 일가친척 아저씨가 급히 달려와 건져주는 덕분에 익사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대구에서 고등학교 시절에 여름방학을 맞아 대구 근교 경산에서 과수원을 경영하시던 고모부님 댁에서 잠시 허드렛일을 도우며 용돈을 타 쓰던 시절에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고모부님의 자전거를 타보고 싶어 캄캄한 밤중에 몰래 타다가 다리 아래로 추락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다리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곳 도로 상황을 잘 알지 못했던 터라 큰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 된 다리라 인도도 자전거 길도 없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른 채 캄캄한 밤에 자전거와 함께 허공으로 내던져졌던 것입니다. 천만다행으로 타박상 외에 크게 다친 데는 없었지만, 만일 거꾸로 다이빙을 했더라면 머리를 크게 다칠 뻔한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겪은 어려움은 군대 생활을 하던 때였습니다. 일반 하사관으로 차출되어 훈련을 받던 중 원주 근교 간현에서 유격훈련을 받을 때 제 차례가 되어 학생 대대장으로 대원들을 진두지휘하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부대에서 사용할 싸리비를 만들기 위해 부대원들이 흩어져 싸리나무를 꺾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별생각 없이 바위 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비에 젖은 이끼로 인해 쭉 미끄러지면서 몇 미터 아래 바위 위로 곤두박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머리나 목이나 허리를 다치진 않았지만, 왼쪽 눈 윗부분이 찢어져 임시 야전병원에서 마취도 하지 않은 채 봉합수술을 했는데, 의무병들이 깔끔하게 시술을 못하는 바람에 아직도 상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최근에 일어난 사고로 하마터면 큰 어려움을 당할 뻔했습니다. 제법 튼튼하게 만든 차인데도 폐차가 되고 응급실에 실려가는 사고였지만 이마를 여섯 바늘 꿰매는 상처 외에는 크게 상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머리도 찍어보고 목도 찍어보았지만 상한 데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봉합 시술이 잘 되어 상처 흔적이 별로 드러나지는 않아 말하지 않으면 잘 몰라볼 정도이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아전인수 격일 수도 있으나,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있음을 생각하면서 문득 아프리카 선교 개척자인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이 한 유명한 말, “사명자는 죽지 않는다(Missionary does not die)”라는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또 오랜 전에 읽었던 스위스의 사상가 칼 힐티(Carl Hilty)의 《행복론》에 나오는 말, “인간은 사명을 다하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는 말도 새삼 기억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신정정치를 확립하시기 위해 그를 만난(萬難) 가운데서 지켜주셨습니다. 그는 사울의 시샘을 받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피를 많이 흘려 그 손으로 성전을 지울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전쟁을 치르며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그는 시편 18편에서, 그가 당한 고난을 언급하며, 이 위기 중에 드린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시편 18:4-6)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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