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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자유는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자유는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지난주 월요일(2023년 10월 23일)에 아내와 함께 동네 극장에서 단 이틀간만 상영한다는 ‘Beyond Utopia’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한국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이며, 미국인들에게도 반드시 권해야 하는 영화일 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교회나 단체에서 단체관람도 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광고에 마음이 끌려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할머니와 아빠, 엄마 그리고 어린 자녀들 3대가 탈북하여 몇 나라를 거쳐, 글자 그대로 힘겹게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산전수전을 겪으며, 사선을 넘어 이윽고 자유의 땅 한국에서 정착하는 험난한 과정을 미국인 중년 여성들이 힘을 합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탈북을 돕느라 병약한 어린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에 일찍이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후 이 한 알의 ‘밀알’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야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후 무려 1,000이 넘는 자들의 탈북을 돕느라 고군분투하시는 김성은 목사님 부부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진한 감동을 받았으며, 또한 아들을 북녘땅에 남겨두고 온 한 어머니의 애끓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하게 저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느끼는 감정은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를 결코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복음성가 중에 손경민 님이 작사, 작곡한 ‘은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어린아이 시절과 지금까지/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오늘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제가 사는 북버지니아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미국의 수도 워싱턴이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가 있는데, 공원 입구에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조형물이 눈에 띕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는 자유는 3년간의 전쟁에서 한국군 13만여만 명과 유엔 16개국 참전군 4만여만 명 등 우리 측에서만 17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사망했으며, 남북한 민간인 250여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반도의 반쪽은 아직도 김씨 일가의 독재 치하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온갖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인 ‘Beyond Utopia’는 반어적인 표현입니다. 북한 당국은 국민에게 북한 체제가 ‘유토피아’ 즉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라고 세뇌시키고 있으며, 대부분의 국민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정확한 제목은 ‘Beyond so-called Utopia’ 내지는 ‘Beyond false Utopia’로 해야 맞겠지만, 제작팀이 짐짓 반어적으로 제목을 붙인 것은 나름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유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소위’ 유토피아 또는 ‘가짜’ 유토피아 너머 ‘진짜’ 유토피아를 찾아 목숨을 무릅쓰고 숱한 고생을 자초하며 자유를 찾아나선 영화의 주인공들, 그리고 불완전한 자유지만 그 자유마나 누리고자 어렵사리 탈북한 자들이 중국에 의해 하릴없이 북송되는 기사를 대하면서 머리를 스치는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가 던진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라는 외마디 호소였습니다. 39세의 변호사이자 식민지 의회 의원이었던 그의 외침은 당시 영국 식민지 지배하에 착취당하며 살고 있던 미국인들의 가슴에 요동치는 감동을 주었으며, 미국의 독립전쟁을 촉발하는 데 있어서 마치 폭탄을 던지는 것과 같은 도화선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자유’ 하면 얼른 머리를 스쳐가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자유의 종(Liberty Bell)과 독립선언서(Declaration of Independence),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그리고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 대통령 등일 것입니다. 역사의 경험을 통해 미국은 자유를 국가의 핵심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 행사나 일반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자유를 여러 차례 언급하는 것으로 화제가 되곤 하는데, 그는 경제학자였던 부친이 선물해주신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생책’으로 꼽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요한복음 8: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리라“)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제가 처음 예수 믿기 시작했을 때, 예수 믿는 기쁨보다는 왠지 모르게 늘 구속당하고 제지당하는 압박감을 느끼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깨닫고 나서는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자유를 알기 전에는 율법적인 신앙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신앙생활의 기쁨보다는 마음 한 구석에 늘 뭔가 켕기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깨닫고 보니 율법주의의 구속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흔히들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대헌장’으로 일컫는 갈라디아서 5:1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여기서 말하는 ‘종의 굴레’는 전후 문맥으로 볼 때 ‘율법의 굴레’를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율법의 조항들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잘못된 교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성취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효(功效)를 믿는 자는 더 이상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을 행함으로써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할례는 유대주의자들이 율법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는 율법이었지만, 바울은 할례를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내세우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도전합니다.

(갈라디아서 5:2-4)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는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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