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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이중 전이(double transfer)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다루는 분야를 기독론(Christology)이라고 하고, 기독론 중에서도 구원론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여김을 받는 것을 칭의(稱義, justification)라고 합니다. 그런데 칭의는 두 가지 전이(轉移, 옮겨짐) 즉 ‘이중 전이(the double transfer)’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중 전이란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로 전이되고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로 전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류의 조상이요 대표자인 아담이 선악과 사건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인해 원죄를 얻게 되었고, 그 원죄가 대대로 모든 인류에게 유전되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3:10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모두가 다 죄인이며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구체적으로 범하는 범죄행위(crime)가 아니라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sin)를 의미합니다. 헬라어로 죄는 ‘하마르티아’라고 하는데, 이것은 ‘표적에서 벗어나는 것(to miss the mark)’ 즉 하나님의 뜻과 표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죄의 삯(wage)은 사망입니다. 여기서 사망은 단순히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영원한 지옥 형벌에 처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은 육체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브리서 9:2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요, 따라서 어느 누구도 죄의 대가인 영원한 형벌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아무런 죄도 없는 그분으로 하여금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속(代贖)의 은혜입니다.

(로마서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贖良)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한 구절 속에 기독교의 구원론이 압축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구절 속에는 ‘대표성의 원리’에 따라 두 가지 연합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즉 ‘아담과의 연합(union with Adam)’과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입니다.

(로마서 5:18-19)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고린도전서 15:21-22)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성경해석 방법 중에 ‘유형론적 해석’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대비시켜 구약시대의 인물, 사건, 제도, 사물 등을 그림자 또는 예표로, 그리고 신약시대의 인물, 사건, 제도, 사물 등을 실체로 보는 해석 방법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오늘 칼럼과 관련해 가장 적절한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면 아마도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일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45-49)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이 말씀에서 첫 사람 아담은 마지막 아담 또는 둘째 사람이신 예수님을 예표(豫表, pre-shadow)하는 하나의 그림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부활에 관해 언급하면서 사도 바울은 아담과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아담은 ‘생령/생명체(a living being)이지만,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a life-giving spirit)’이라며 서로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육의 사람’ 대 ‘신령한 사람’, ‘땅에 속한 자’ 대 ‘하늘에 속한 이‘로 대조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이전에는 단순히 흙에 속한 자로서 궁극에는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을 수밖에 없지만,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는 하늘에 속한 예수님의 형상을 입고 부활하여 영생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이 우리에게 그대로 전이되어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6:3-5)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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