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견월망지(見月忘指)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달을 봤으면 손가락을 잊어버리라”는 뜻입니다. 달을 보라고 했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본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정작 보아야 할 본질과 실체는 보지 못하고 중요하지 않은 주변적인 것이나 부차적인 것에 눈을 돌리는 것을 의미하는 사자성어입니다.
눈썰미가 있어서 한번 본 것은 잊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눈이 보배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 할 만큼 눈은 참으로 중요한 지체입니다. 그런데 단지 눈의 육체적인 기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물이나 사건이나 현상을 보고서 그것들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안목’입니다. 우리가 자주 드는 예가 있습니다. 컵 속에 물이 반이 남아 있을 때 어떤 안목으로 보느냐로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 또는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을 가립니다. 동일한 현상을 보고서도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어떻게(how)’ 보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무엇(what)’을 보느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민수기 13장에는 가나안 땅을 정탐한 정탐꾼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에 앞서 열두 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 땅에 보내어 그 땅을 정탐하도록 하셨습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두루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은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보고회를 가졌습니다. 그 땅이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었습니다. 그 증거로 자신들이 가나안 땅에서 가지고 온 소담스러운 과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땅에 들어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자는 데에는 의견이 갈렸습니다. 갈렙은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으니 당장에라도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열 명의 정탐꾼들은 거인족인 아낙 자손을 위시해 강한 거주민이 살고 있고, 게다가 성읍들이 크고 견고할 뿐만 아니라 그들 보기에 우리는 마치 메뚜기처럼 보일 텐데 어떻게 우리가 그 땅을 취할 수 있겠느냐고 강변했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외적인 상황만 보고 열등감에 빠져 지레 패배의식에 빠지는 것을 ‘메뚜기 신드롬(grasshopper syndrome)’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사건에서 연유한 말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과 달리 여호수와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독려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사실보다 태도가 중요하다(Attitude is more important than fact)”라는 익숙한 말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는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보고한 그대로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고, 그 땅의 거주민들은 크고 강한 자들(tough guys)이었으며, 성읍들은 견고했습니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을 뿐입니다. 똑같은 것들을 보았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랐을 뿐만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도 관점이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서 메고 온 에스골 골짜기의 거대한 포도송이에 눈이 먼저 갔고, 나머지 열 명은 거인들과 거대한 성읍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외적으로 무엇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함의(含意)가 중요합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의 눈으로 보았고, 나머지 열 명은 단순히 피상적으로 보이는 현상에 집착한 나머지 육신의 눈으로만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와와 갈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다른 정탐꾼들은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기비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보배롭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높은 자존감과 함께 분명한 정체성(Christian identity)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메뚜기 자화상을 가진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가졌던 믿음의 사람 다윗에게는 거인 골리앗은 오히려 물맷돌로 쉽게 맞출 수 있는 거대한 표적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재미난 죠크도 한 번쯤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18-5:1,7)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니라(we live by faith, not by sight).”
믿음을 가진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주시하며 살아야 합니다. 한시라도 하나님의 시선을 놓쳐버리면 자칫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다윗의 행적에 대하여 열왕기상 15:5은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충직한 부하 우리아 장군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그의 아내를 몰래 범한 후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되자 그 범죄를 은닉하기 위해 갖가지 수법을 동원하다가 여의치 않자 마침내 그를 최전방에 내보게 하여 전사하게 한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생의 큰 오점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도 물 위를 걷다가 풍랑을 보고 무서워 주님을 향한 시선을 놓쳤을 때 물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우리 시선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가 이렇게 중요한 것임을 한시도 잊지 맙시다.

Number | Title | Date |
293 |
행복의 조건
|
2023.09.30 |
292 |
대체의 법칙
|
2023.09.23 |
291 |
아프레 쓸라(apres cela, 그 다음에는)
|
2023.09.15 |
290 |
의인인 동시에 죄인
|
2023.09.09 |
289 |
딤플 인생(Dimple Life)
|
2023.08.31 |
288 |
그리스도의 법
|
2023.08.26 |
287 |
그리스도인의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
2023.08.19 |
286 |
이중 전이(double transfer)
|
2023.08.11 |
285 |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
2023.08.05 |
284 |
강요된 은총
|
2023.07.29 |
283 |
꿈을 품는 자
|
2023.07.23 |
282 |
관계지수(NQ, Network Quotient)
|
2023.07.16 |
281 |
배려하는 마음
|
2023.07.08 |
280 |
철률(鐵律), 은률(銀律), 황금률(黃金律)
|
2023.07.02 |
279 |
역경지수(AQ, Adversity Quotient)
|
2023.06.25 |
278 |
소소한 일상에서 맛보는 행복
|
2023.06.16 |
277 |
‘덕분에’ vs ‘탓에’
|
2023.06.09 |
276 |
건천 신앙과 옹달샘 신앙
|
2023.06.03 |
275 |
나의 신앙간증 2제(題)
|
2023.05.26 |
274 |
환경이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
|
2023.05.20 |
273 |
가족이 곧 가정이다
|
2023.05.13 |
272 |
복된 가정
|
2023.05.06 |
271 |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배려심
|
2023.04.27 |
270 |
믿음이란 무엇인가
|
2023.04.21 |
269 |
죽어야 사는 역설적인 진리
|
2023.04.15 |
268 |
생명과 부활
|
2023.04.08 |
267 |
마음의 근육을 키웁시다
|
2023.04.01 |
266 |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
2023.03.25 |
265 |
하나님의 길과 인간의 길
|
2023.03.17 |
264 |
삶의 우선순위
|
2023.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