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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강요된 은총



하나님의 은총은 각 사람에게 매우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양상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합니다. 마가복음 15장에 구레네 출신의 시몬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마가복음 15:21) "마침 어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길에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다. 로마 군병들은 그에게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로마 제국으로부터 파송된 유대 총독 빌라도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으신 예수님은 그 당시 사형수들이 그랬듯이 자기가 처형될 십자가를 메고 사형장으로 가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혹독한 심문을 받아 지칠 대로 지치신 주님은 로마 군병들이 채찍질을 하며 매섭게 다그쳤지만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가시기에는 힘이 달렸습니다. 그래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셨습니다. 그러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군병들은 마침 시골에서 올라와 그곳을 지나가고 있던, 건장해 보이는 시몬이라는 자를 붙들어 우격다짐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합니다. 시몬은 구레네 출신이었습니다. 구레네는 북아프라카 지중해 연안에 있는, 오늘날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Tripoli)의 옛 이름입니다. 시몬은 엉겁결에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창피스럽고 억울하고 기가 막힐 일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재수 없는 자가 있을까 싶을 만큼 억세게도 재수 없는 사나이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의 인생에 대반전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의 이름이 성경에 거명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이들은 초대교회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루포는 후일 로마교회의 중견 인물이 되었고, 알렉산더도 예루살렘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 교회를 섬겼을 것으로 짐작되는 사료가 히브리대학의 발굴팀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게다가 시몬의 부인은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로마서 16:13)라고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할 만큼 신앙적으로 흠모할만한 분이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3:1에는 구레네 시몬이 ‘니게르(흑인) 시므온’이라는 이름으로 사울(바울)과 바나바 등 안디옥 교회 초대 지도자들과 같은 반열에 나란히 열거되어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합니다. 한 마디로 구레네 시몬의 가족들 모두가 초대교회 시절에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존경받는 지도자들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신실하게 잘 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스스로 원해서 십자가를 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 일은 결과적으로 그와 그의 온 가족들에게 ‘강요된 은총’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지고 갔던 그 무겁고 수치스러운 십자가는 마지못해 억울하게 짊어진 십자가였지만,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생각해본다면 그의 몫에 태인 십자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는 ‘문자적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셈입니다.

살다 보면 때때로 원치 않는 십자가가 지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가 너무나 버겁고 부담스러워 그만 훌훌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때마다 구레네 시몬의 생애를 생각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강요된 은총’이 아닌지 곰곰이 반추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청빙을 받아 미국에 오면서부터 섬기던 서울장로교회를 28년 반 시무하다가 7년 전에 65세로 조기은퇴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허송세월을 하면 안 되겠다 싶어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과정(D.Min)을 3년 만에 수료했습니다. 그러나 논문을 쓰는 게 부담이 되기도 하고 별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해 3-4년 동안 짐짓 포기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워싱턴신학교(Washington Theological Seminary)의 이사장님의 권유로 목회학 박사보다는 좀 더 아카데믹한 기독교교육 박사과정(DCE)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좀 쉬면서 편하게 지내길 원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상황과 사람을 통해서도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지도 모르겠다 싶어 일단 권유를 받아들여 수업을 들으면서 동시에 강의와 학사 업무도 일정 부분 맡아서 하나하나 배워가며 어렵사리 감당하고 있는데, 저는 이것이 ‘강요된 은총’이 되길 바라며 나름 하루하루 성실하게 만학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제가 은퇴한 후 오랫동안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안수집사님이 인터넷 신문을 시작하시면서 저에게 ‘신앙칼럼’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길래 전혀 안 해본 일이라 솔직히 선뜻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이왕 할 거면 매주 한 편씩 쓰는 게 좋겠다 싶어 꾸준히 쓰다 보니 어느새 270편 이상을 쓰게 되었습니다. 신앙칼럼을 쓰면서 은퇴 후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영성도 다소간 유지할 수 있었고, 알게 모르게 꽤 많은 분들에게 호의적인 피드백을 받으면서 소위 ‘간접 목회’를 한 셈이 되었으니 이것도 일종의 ‘강요된 은총’임을 고백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원하지 않는 데로 내몰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실수도 실패도 없으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 인간의 실수와 실패까지라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전화위복의 하나님, 자녀들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선하신 하나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우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우리의 생각을 훨씬 능가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네비게이션을 따라 ‘한 번에 하나씩(one at a time)’ 감당해가노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만치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순간이 올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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