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믿음이란 무엇인가

저는 지금 원로목사이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본 교회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예배 참석을 하고, 나머지 주일에는 어떤 직책을 맡지 않은 채 그냥 일반 교인으로 개척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몇 주 전에 제가 출석하지 못한 주일에 이 교회의 목사님이 하셨던 설교 영상을 교회 단톡방에 올려주셔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날 설교의 주제는 ‘믿음’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믿음이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면서도 정작 그 의미를 설명해보라면 주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가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0년에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니제이 굽타(Nijay K. Gupta) 교수의 『바울과 믿음 언어(Paul and the Language of Faith)』라는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믿음의 세 가지 용례(用例)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믿음(헬라어, πίστις[피스티스])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자 기독교의 핵심 단어입니다. 니제이 굽타는 바울이 사용한 ‘믿음’이라는 단어가 1세기 당시 유대인과 그리스-로마 세계의 영향을 받아 넓은 스펙트럼의 다양한 개념들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믿음의 의미와 관련해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믿음을 율법이나 행위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보는가 하면, 또 어떤 학자들은 믿음이 지적인 동의가 아니며 ‘충성(fidelity), 신실함(faithfulness)’이라는 뜻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에 의하면, 바울이 사용한 핵심 용어인 믿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단어나 한 가지 정의로 국한해서는 안 되며, 믿음이라는 단어가 가진 역동성과 다면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인식의 변화,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적 의존성, 그리스도에 대한 적극적인 충성 등을 포함해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굽타는 믿음을 세 가지 즉 믿음(belief), 신뢰(trust), 충성(faithfulness)으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구원의 믿음(belief)입니다. 이 믿음은 크다, 적다로 말하지 않고 있다, 없다로 말합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바로 그 믿음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 구원의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주시는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둘째, 신뢰의 믿음(trust)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분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구세주(Savior)로 고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의 주님(Lord)으로 고백하며, 나의 모든 것을 양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네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실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자비로우시고, 선하시고, 신실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화폐에는 “IN GOD WE TRUST”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으면서도 정작 삶 속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IN GOD WE BELIEVE”라는 말 대신 이 글귀를 사용한 것에 대하여 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보내준 글 가운데 단순하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 글이 있었습니다.
“가뭄이 계속되자 모든 마을 사람들이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우제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였는데 한 소년은 우산을 들고 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기를 공중에 던지면 아기는 어른이 받아줄 것을 알기에 까르르 웃습니다. 이것이 신뢰입니다.”
로마서 8:28은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무한신뢰를 갖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또한 로마서 8:31-39은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웅변적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순종의 믿음(faithfulness)입니다. 이 믿음은 크다, 적다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순종의 믿음을 가장 잘 보여준 성경 인물은 아마도 아브라함일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에도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오늘날처럼 지리 상식이 많지도 않았고 또 지도나 네비게이션 같은 것도 없었던 시대에 인근지역도 아닌 멀고 먼 곳을 향해 무작정 떠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모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길 안내를 해주시리라는 것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순종의 믿음은 신뢰의 믿음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신뢰한다고 해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의 믿음은 그가 외아들, 그것도 약속의 아들을 모리아 제단에 바치는 데서도 여실히 증명됩니다. 그저 남의 일로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막상 내가 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과연 순종할 수 있을까요? 정말 위대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믿음, 신뢰의 믿음, 순종의 믿음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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