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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다른 복음은 없나니



바야흐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맞이했습니다. 12월은 성탄절이 있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별한 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절기상 성탄절 이전의 4주간을 대림절(강림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절기에는 예수님의 초림의 의미를 되새기며 재림의 신앙을 담금질하는 기간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12월은 예수님에 대하여 묵상하며 보내는 달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12월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이 되는 구원사역 즉 복음에 대하여 상고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서신의 첫 부분을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1:5-8)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교회에는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희석시키고 왜곡하려는 유대주의 거짓 교사들이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가르쳤지만, 바울이 떠난 이후 이들은 믿음만으로는 안 되며 구약의 율법도 함께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가르침을 갈라디아주의 또는 혼합주의(syncretism)라고 합니다. 이들은 순도 100%의 복음에 물타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을 향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엄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사안이 아닌 것들에 대해 바울은 비교적 융통성을 가지고 포용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복음이라는 본질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철저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자비를!(in necessaris unitas, in unnecessaris libertas, in omnes charitas)”이라는 기독교의 명언은 사도 바울의 신앙에도 그대로 배어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유독 복음에 대하여서만은 가차 없이 엄격한 태도를 보인 이유는 그가 계시로 받은 복음의 원천(originality)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이어서 그는 한때 유대교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예수 믿는 자들을 심하게 박해했던 자신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열두 사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혈육과도 의논하지 않은 채 곧장 아라비아로 가서 3년 동안 기도하며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은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복음에 대한 확신이 철저했기 때문에 믿는 자들을 향해 감히 발설하기 어려운 ‘저주’라는 금기어까지 서슴없이 언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래 전에 『C.C.C.10단계 성경교재』를 본 적이 있는데, 맨 처음 단원의 제목이 ‘예수의 유일성’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이 유일무이한 구원자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소위 ‘타종교와의 대화’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종교다원주의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다원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오늘날의 시대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도 구원받는 길이 많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종교다원주의자들은 ‘One God, many Christs’를 표방합니다. 몇 해 전에 서울 성공회신학교의 비교종교학 교수인 오강남 교수가 『예수는 없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출간해서 기독교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또한 그는 정통 기독교에서 외경(外經)으로 취급하고 있는 도마복음을 중심으로 『또 다른 예수』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노골적으로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면서 불교 용어까지 동원해 예수님을 ‘성불한 예수’라고 일컫는 망발을 자행하기도 했습니다. 다원주의란 쉽게 말해서 이것저것 다 인정하고 포용하자는 주장입니다. 그는 기독교의 배타성을 ‘만만주의’라고 꼬집었습니다. ‘기독교만, 예수만’ 하는 게 못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신앙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괜찮다’는 식의 ‘도도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일견 그의 주장이 통 큰 포용주의처럼 들릴 수 있으나 사실상 복음주의에서 한참 벗어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날이 갈수록 왜 예수만이 구세주여야 하며, 왜 기독교만이 구원의 종교여야 하느냐고 불평하면서 불신자들의 주장에 맞장구를 치는 얼치기 신학자, 얼치기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타종교를 포용할 줄 모르는 옹졸하고 편협한 종교라고 비아냥거립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괜히 속 좁은 졸렬한 사람처럼 보일까 싶어 뭐가 옳은지도 모르고 다짜고짜 다원주의에 편승하는 자들도 없지 않습니다. 복음에 대한 확신이 없는 자들에게는 단연 다원주의가 인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바울 자신도 그러한 사실을 십분 의식하고 있었음을 다음의 언급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성경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데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소 융통성 있게 적용될 수 있겠지만, 성경의 근본적인 진리, 특히 구원의 도는 결코 변개될 수 없는, 절대성을 지닌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복음의 파수꾼의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진실한 크리스천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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