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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근면의 미덕 = Labor Day(노동절)를 맞이하면서=



성경에는 인생의 지혜를 교훈하는 이른바 ‘지혜문서’로 분류되는 책들이 있는데, 잠언이 가장 대표적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언의 많은 부분이 지혜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솔로몬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잠언을 읽다 보면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가 내용상 대조적으로 나란히 등장하는 구절을 자주 대할 수 있습니다.

(잠언 24:30-32)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

이 구절에서 ‘게으른 자’와 ‘지혜 없는 자’는 동격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전답을 가꾸지 않고 포도원을 방치해버린 게으른 자는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셈입니다.

밭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옥토가 박토가 될 수도 있고 박토가 옥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지런한 농부의 밭에 소출이 많은 것은 당연합니다. 호미질하는 횟수에 따라 그 해의 작황이 달라집니다. “곡식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속담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메마른 천수답도 수로를 내고 때맞춰 물을 대주면 벼가 잘 자랍니다.

곤충과 같은 미물도 하나님이 주신 본능에 의해 우리 인간에게 교훈을 주는 예가 많이 있는데, 잠언은 개미를 통해 근면의 미덕을 교훈하기도 합니다.

(잠언 6:6-8)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의 성경적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으른 자에게 가난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강도처럼 들이닥치게 되고 군사처럼 거세게 쳐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을 때 준비해야 나중에 곤란을 겪지 않게 된다는 유비무환의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하는 개미의 지혜야말로 인간에게 자율의 가치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시켜서 하는 타율보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자율이 더 높은 차원의 가치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가치는 신율(神律)입니다. 스스로 자율을 포기하는 곳에서 신율이 탄생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신율적인 삶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지배하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 두령도 감독자도 통치자도 없지만 묵묵히 자기 일을 감당해 나가는 개미처럼 우리도 하나님 존전에서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성실하게 감당해 나가는 것이 곧 참 신앙인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속임수가 결코 통하지 않습니다. 특히 잠언에는 “심는 대로 거둔다”는 파종과 수확의 원리에 근거하여 근면한 노동의 대가를 여러 구절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10:4, 5)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12:2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22:29) “네가 자기의 일에 근실(勤實)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미국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된 것은 저절로 된 일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천혜(天惠)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기초를 닦은 청교도들의 근면 성실한 삶의 자세 덕분에 오늘날 미국이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청교도들의 근면 성실은 바로 기독교의 노동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선한 직업은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믿는 신앙이 있었기에 그들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생업에 종사했고, 또 쓰고 남은 것은 알뜰하게 저축함으로써 자본이 축적되어 마침내 자본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저서에서 청교도들의 근검절약 정신이 자본주의의 모태가 되었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기독교의 노동관은 루터와 깔뱅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정립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노동관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일하도록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소명 직업관’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직업을 영어로는 calling 또는 vocation이라고 하고, 독일어로도 같은 의미의 Beruf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직자들만이 calling을 받은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직업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열심히 일하면서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것도 또한 예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을 가진 자라면 마땅히 근면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호구지책으로 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생업의 터전을 허락하시고 일할 수 있는 여건과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성실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Happy Labo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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