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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쉼의 의미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어느 회사의 광고 문구가 생각나는 바캉스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어인 바캉스(vacance)의 어원은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비우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베이케이션/버케이션(vacation)입니다. 동사형인 vacate는 (집 따위를) 비우거나 살던 곳에서 퇴거한다는 뜻입니다. 화재경보가 울리거나 전쟁이 터졌을 때 소개(疏開)하는 것을 evacuation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바캉스는 평소 기거하던 장소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잠시 쉼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휴가(休暇)의 한자 의미는 ‘쉴 휴, 겨를 가’입니다. 쉴 ‘겨를’이 없이 빡빡하게 돌아가던 일상에서 탈출해 잠시 쉼을 가지는 것이 휴가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집이 최고야. 집 떠나면 X고생이지!”란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합니다. 아직은 리조트와 같은 휴양시설이 미비하고 인구에 비해 휴양지가 제한된 탓에 바캉스 전쟁이나 바캉스 지옥이란 표현에서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한국 휴가 문화의 실태입니다. 그렇긴 하나 경제성장과 함께 이제는 해외여행도 별로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으니 미국으로 이민올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몇 년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집이나 호텔 그리고 도심에 머물며 휴가를 보내는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 ‘홈캉스’(home+vacance), ‘호캉스’(hotel+vacance)와 같은 신조어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뉘앙스가 좀 다르긴 하지만 최근에는 ‘워캉스’(wocance)라는 말도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work와 vacance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말 그대로 일을 하면서도 휴가를 간 듯한 기분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따분한 재택근무 대신 호텔이나 휴양지에서 원격근무를 하면서 유쾌한 오피스 라이프를 채험하도록 유도하는 신종 비즈니스가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점차 인기를 얻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모든 바캉스는 ‘쉼’에 방점이 찍혀야 합니다. 우리는 쉼을 그저 노는 것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태한 것과 동일시해서 자칫 죄책감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도 휴가로 인해 죄책감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이레째 되는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것은 물론 육신적으로 피곤해서 그러신 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을 위시해 모든 피조물들에게 안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배려의 차원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되 이레째 되는 날은 쉬어야 한다고 명령하셨고, 이것이 나중에 모세의 율법에서는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이 되었습니다. 다른 계명이 하나님의 명령이듯이 안식일 계명도 하나님의 엄연한 명령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안식일 계명의 일차적인 목적은 한 주일에 하루를 쉬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도록 하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영적인 목적 외에 인간의 복지를 배려하시는 차원에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는 실제적인 목적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 즉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을 통해 모든 피조물을 축복하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일과 휴식의 리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아셨기에 일주일이라는 사이클을 만드시고 엿새는 힘써 일하되 하루는 쉬도록 고안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 가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내린 결론인즉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주기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한때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인들의 주일성수를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사이클을 늘여보기도 하고 줄여보기도 했지만 노동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스스로 확인했을 뿐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심지어 땅도 쉬고 짐승도 쉬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안식일뿐만 아니라 확장된 안식 제도인 안식년과 희년 등 모든 제도는 노동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오락을 의미하는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을 재창조(Re-creation)의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자들도 있습니다. 휴가는 재창조를 위한 충전의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가가 힐링이나 재충전과는 거리가 먼,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중압감에 떠밀려 연례적으로 치르는 일종의 행사가 되어버린다면 그 의미는 십분 퇴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캉스로 인해 스트레스만 잔뜩 쌓이고 충전은커녕 그나마 남아있던 기운마저 다 방전되어버린다면 차라리 집에서 ‘방콕’하느니만 못한 짜증스러운 휴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바캉스 하면 일단 해변을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아마도 대부분 더운 여름철에 휴가를 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 선비들은 바닷가보다는 주로 산 좋고 물 좋은 산야를 찾아 책을 벗삼아 휴양을 즐겼습니다. 쉴 휴(休)란 한자는 본디 나무에 사람이 기대 있는 형상입니다. 판에 박은 듯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휴가철도 휴가 장소도 그리고 휴가 방법도 가끔씩 변화를 주어본다면 아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휴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앙이 돈독한 분들 중에는 휴가를 영적 재충전의 기회로 삼는 분들도 있습니다. 기도원이나 수양관에 들어가 평소 분주한 일상 가운데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갖지 못했던 아쉬움을 해소하는 것도 영육이 함께 쉼을 얻는 좋은 방법이 되리라 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단 죄의 짐뿐만 아니라 인생의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과 은밀하게 대화하는 가운데 그 짐을 덜 수만 있다면 사실 이보다 더 좋은 쉼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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