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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시련을 당할 때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합니다. 야고보서 1:2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 가지 고난’은 영어 성경에는 ’trials of many kinds‘라고 번역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시험‘은 ’유혹‘(temptation)이 아니라 ’시련‘을 의미합니다. 시련은 고통이 따르기는 하지만 단순히 고통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연단을 받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신앙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뻐하되 ’온전히 기뻐하라‘(Consider it pure joy.)고 권면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시련의 연속입니다. 한 고비 넘기고 나면 또 다른 고비가 닥칩니다. 육신이 병들기도 하고,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사업상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본인 자신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인척이나 친구들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이 없는 인생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시련을 만날 때마다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의 법칙 가운데 ’90% 법칙‘(90% Rule)이라는 게 있습니다. “인생이란 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은 10%이며 나머지 90%는 그것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다.”(Life is 10% of What Happens to Me and 90% of How I React to It.)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10%는 대부분의 경우 내가 스스로 조정할 수 없는 것들(out of control)입니다. 이렇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사실‘(fact)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태도‘(attitude)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90% 법칙‘은 달리 표현하자면, “태도가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Attitudes are more important than facts.)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사실에 대한 해석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긍정적·적극적 사고라는 말은 결국 태도의 중요성을 일컫는 가장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시련을 당할 때 왜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3-4)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특히 ’믿음의 시련‘(the testing of your faith)을 당할 때 요구되는 것은 인내입니다. 참아내야 합니다. 참되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성숙하고 완전한 인격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에도 같은 내용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구절에서 ’연단‘이라는 단어가 영어 성경에는 문맥상 원어의 의미를 충실히 살려 ’character’(인격)로 번역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해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환난을 잘 참고 견뎌내면 마침내 성숙한 인격을 갖추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소망스러운 삶을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편 저자는 고난의 유익에 대하여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67,71)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비록 고난의 원인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닐지라도 고난을 통해 여러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고난을 당하면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게 되고,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이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무심했던 이웃들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신앙생활을 더욱 착실하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시편 저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자행자지(自行自止)하며 살았는데, 고난을 당하고 나서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말씀 대로 살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약할 때에 주님의 능력이 오히려 온전히 나타난다고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은 후 고난의 유익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12:9,10)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

사도 바울은 그가 당하는 시련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사단의 사자, 육신의 가시, 즉 매우 고통스러운 질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육신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지만 기도 응답은커녕 엉뚱한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가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혹시라고 자고하지 않도록 그 질병을 그대로 짊어지고 가는 게 도리어 유익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이 말씀에 아멘! 하면서 시련을 기꺼이 지고 가기로 결단합니다. 정말로 성숙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혹 원치 않는 시련을 당할 때 사도 바울처럼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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