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가족 공동체

우리는 공동체(共同體)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가족 공동체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서구 사회에서 공동체를 뜻하는 커뮤니티(community)는 라틴어로 ‘같음’을 의미하는 communitas에서 유래했으며, 이 말은 ‘모두에게 공유되는’이라는 의미를 지닌 communis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communis는 접두사 con(함께)과 munis(서로 봉사하다)의 합성어입니다. 공동체는 단순히 사람들이 끌어모인 ‘집단’(group)과는 구분됩니다. 공동체는 동일한 관심과 의식으로 같은 환경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공동체는 믿음, 자원, 기호(嗜好), 필요, 위험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공유하며, 참여자의 동질성과 결속성에 있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따라서 공동체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소속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미국 교회뿐만 아니라 한인교회의 이름 중에도 Community라는 말이 들어가는 교회가 꽤 많습니다.
바로 이러한 특징 때문에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가족 공동체는 모든 공동체 중에서도 공동체성을 가장 뚜렷하게 지닌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의 구성원인 식구(食口)는 함께 식사를 하는 이른바 ‘밥상 공동체’입니다. 요즘의 산업사회에서는 생활패턴이 농경사회와는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기회가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혼밥’입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난 것도 혼밥 트렌드를 부추킨 원인입니다. 그러다 보니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혼자서도 맘 편히 식사할 수 있도록 혼밥족들을 배려한 혼밥식당도 등장했습니다. 혼밥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혼’자가 들어가는 신조어가 많이 생겼습니다. 혼자 술 마시는 혼술, 혼자 여행가는 혼행 등 ‘1인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러한 경향에는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의 영향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나홀로 문화’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온 식구가 함께 어루어져 함께 세워가는 공동체성(togetherness)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본디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도록 되어있는 사회적 존재(social being)입니다. 그래서 ‘인간’(人間)이라 일컫는 것입니다. 언젠가 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나는데, 인간을 사회학적으로 말할 때 영미권에서는 ‘together-being’ 그리고 독일에서는 접미사 mit(함께)와 Mensch(사람)를 합성해 ‘Mitmensch’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페르디난트 퇴니에스(Ferdinand Tönnies)는 사회의 집단을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community)와 게젤샤프트(Gesellschaft, society)로 구분해서 전자를 공동사회, 후자를 이익사회라고 이름붙였습니다. 공동사회는 가족·친족·민족·마을처럼 혈연이나 지연 등 애정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며 비타산적이라는 특징을 갖는 반면, 이익사회는 회사·도시·국가·조합·정당 등과 같이 계약이나 조약 또는 협정에 의해 이해관계를 따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집단입니다.
그의 분류에 따르자면, 가족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가장 전형적인 공동사회에 속합니다. 공동사회는 애정을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달리 말하면, 공동사회는 헌신적인 사랑이 기초가 되어야 하며, 따라서 이해관계를 초월한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작년의 <기생충>에 이어 올해 <미나리>가 화제의 영화가 되었습니다. 미나리에서 할머니 역을 맡은 윤여정 배우는 40개에 가까운 각종 영화상을 휩쓸고 급기야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최초로 여우 조연상까지 거머쥠으로써 7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별의 순간’(Sternstunde)을 맞이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대사가 한국어로 된 이 영화가 영어권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에 대해 영화 평론가들을 위시해 많은 주류 언론들이 나름대로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디테일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큰 줄기는 거의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이며 보편적인 가족애(家族愛)가 영화 저변에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특히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정감으로 다가오는데, 그러한 할머니 역을 윤여정 배우가 ‘K-할머니’로서 유니크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훌륭히 연기했기 때문에 공감의 폭과 깊이가 더욱 증폭되고 심화된 것 같습니다.

저도 미나리를 길러본 적이 있지만 미나리는 정말 끈질긴(resilient)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양 식품점에서 사다가 잎과 연한 줄기를 먹은 후 아랫 부분 줄기를 잘라서 물에 담궈놓으면 뿌리가 내리고, 그 후에 심지어 물기가 별로 없는 땅에다 옮겨심어도 잘 퍼져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미나리는 이민자들의 강인한 생활력을 상징하는 메타퍼(metaphor)로서,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미국 사회에는 공유된 경험으로 인해 남다른 공감력을 지닐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이 영화에서 높이 평가되는 부분은 끈끈한 가족애와 연대성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역경 속에서도 온 가족이 서로 인내하고 협력하며 헌신하는 데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족은 공동운명체입니다. 즉 동고동락의 공동체입니다. 한 가족의 기쁨은 온 가족의 기쁨이요 한 가족의 슬픔은 모두의 슬픔입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고들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짐을 나눠 지면 무거운 짐도 가볍게 지고 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비유를 통해 교회라는 신앙공동체에서 몸과 지체들 간의 관계를 논하며 서로 불가분리의 관계를 지닌 동고동락의 공동 운명체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비단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어떤 공동체든 동고동락할 수 있을 때 진정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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