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순리를 거스르는 잘못

지난 2월 25일 연방하원에서 ‘포괄적 동성애 인권법안’이라 불리는 평등법(H.R. 5 Equality Act)이 찬성 224, 반대 206으로 통과돼 현재 연방상원의 투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평등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되어 추진되고 있는 이 법에 대해 기독교계는 심한 우려를 표명하며 상원에서 부결되도록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치에 있어서 어느 당이든 모든 정강정책이 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가치관을 건국정신으로 삼고 있는 미국은, 비록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기독교가 국교는 아니지만, 적어도 성경이 분명하게 죄악시하고 있는 동성애를 용인하는 법을 제정하는 데까지 나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의 죄악상을 나열하는 가운데 하나님 대신 피조물들을 더 경배하고 섬기는 우상숭배에 이어 동성애의 죄악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6-27)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received in themselves the due penalty for their error).”
비단 성경이나 기독교를 떠나서라도 동성애는 인류의 보편적 정서에도 맞지 않습니다. 사회의 최소 단위는 가족입니다. 가족의 가치는 종족이나 국적을 불문하고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가치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이 해체되고 가정이 와해되면 그 사회도 함께 무너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입니다. 사회가 무너지면 국가도 세계도 다 무너지고 맙니다. 한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동성 부부가 아이를 입양해서 키울 경우 당장은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게 되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교육학자들에 의하면, 이런 경우 자녀들이 정서적으로 성장하기가 어렵고, 특히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점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축적이 되면 그 사회는 결코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없으며, 출산에도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국가도 매우 혼란스러운 아노미 현상에 빠져들고 말 것은 불을 보듯 명약관화한 사실입니다.

이번에 미국이 입법화하려는 평등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미 언론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습니다. 4세 유치원 아이부터 후천적인 성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18세부터 성전환 수술이나 보험 가입을 부모의 동의 없이 할 수 있으며, 공공 기관이나 회사를 포함한 사립 단체에서 동성애자를 차별하면 법적인 제재를 받게 되고, 교회나 신학교에서 LGBTQ 직원을 차별 없이 고용해야 하며, 화장실과 탈의실과 샤워실과 스포츠 시설의 남녀 공용을 허용해야 하고, 평등법을 준수하지 않는 기관이나 단체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등 각급 정부 기관의 면세 및 인증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 이 법은 ‘차별 금지법’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순리적인 정서를 지닌 다수를 성적 소수자를 위해 우격다짐으로 옭아매는 ‘역차별 조장법’이라고 하는 게 바른 표현일 것입니다. 소위 ‘글로벌 성혁명’이라는 트렌드에 편승하여 대중의 표를 의식해 한국에서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이런 파퓰리즘 정책은 성경적 세계관과 전통적 결혼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종의 도발행위이며, 하나님 형상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사악하고 교묘한 계략에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행태임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성 소수자를 포함해 사회에서 소외받기 쉬운 이민자들이나 경제적 약자들을 돌아보는 것은 전혀 나무랄 게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높이 사야 할 정치행위입니다. 그러나 인도주의적 차원보다는 선거의 표를 의식해 소위 ‘정치적 옳음’(political corrctness)을 지나칠 정도로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자칫 역차별을 낳을 소지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이미 2천 년 전에 동성애 문제를 거론한 것을 보면, 이 문제는 참으로 해묵은 이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목회학 박사 과정을 이수하는 중 학기말 과제로 동성애에 대한 페어퍼를 쓰면서 성경적, 문화적, 역사적, 목회적 관점에서 두루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바울이 이 주제를 언급하기 전에 이미 구약성경 여러 군데서 이 문제를 언급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예로 소돔성에서 있었던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남자들의 동성애 행위인 ‘남색’(男色)의 영어 단어 ‘sodomy’가 유황불 심판을 받은 도시 Sodom에서 왔다는 한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능히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제가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분야는 목회적 관점이었는데,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난제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동성애의 원인이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동성애 행위와 동성애 성향을 구분해야 하는가, 동성애자의 교회 출석과 성례전 참여를 허락해야 하는가 거부해야 하는가, 등등 쉽게 풀 수 없는 난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난제들에 대해 비교적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균형 잡힌 입징을 제시하고 있는 스탠리 그렌츠(Stanley J. Grentz)의 『환영과 거절 사이에서』(Welcoming but Not Confirming: An Evangelical Response to Homosexuality)라는 책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네 가지 입장 즉 무제한 개방, 제한적 허용, 차별적 허용, 무제한 거부 중에서 제한적 허용과 차별적 입장을 지지하면서, 한 마디로 ‘Welcoming but Not Affirming’(환영하지만 긍정하지는 않는다)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비록 동성애자라 할지라도 동성애가 죄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동성애 지향과 싸우며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절제하는 한 교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목회적 배려가 따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되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훈계하신 것과 일맥상통하는 관점으로 봐도 좋을 것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나님은 역리보다는 순리를 선호하신다는 점을 우리 모두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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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
예수님의 모형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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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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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모형③,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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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모형②: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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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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