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코로나 사태의 교훈(2): 관계

최근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특강을 했던 이 지역의 어느 목사님은 코로나 사태의 교훈을 탐욕과 겸손과 관계라는 세 단어로 요약한 바 있습니다. 지지난 주에는 ‘겸손’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은 코로나 사태가 ‘관계’에 미친 영향력에 대하여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한다면, “인간은 관계적 동물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人間)’이라는 한자어도, ‘together being’이라는 영어도, ‘Mitmensch’라는 독일어도 은연중에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관계적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존경하는 교수님 한 분이 “목회는 80%가 인간관계이다.”라고 하셨는데, 이 한 마디 말씀은 오랜 세월 다양한 상황에서 숱한 경험을 통해 체득하신 바를 농축한 경구(警句)와도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철학 중 하나로 ‘인화(人和) 목회’를 표방하고 나름 노력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순간순간 절감하며 한계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관계의 신학자’로 불리는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요한복음 1: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을 패러디해서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라고 하면서, 세 가지 관계 즉 ‘나와 너’의 인격적 관계, ‘나와 그것’의 비인격적 관계, 그리고 ‘나와 영원한 너’의 궁극적 관계에 대하여 설파했습니다. 관계는 우리가 살아있는 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과제입니다. 어찌 보면 인생 자체가 태어나면서부터 관계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 계통의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매주 수요일에는 점심식사 전에 한 시간 채플 시간이 있었고, 연중행사로 유명한 강사님들을 모셔서 사경회(査經會)를 갖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의 교회사 교수이신 민경배 교수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때 하신 말씀 중에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세 가지 중요한 만남이 있는데, 부모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만남’이라는 단어 대신 ‘관계’라는 말로 대체해도 꼭 같은 의미가 될 것입니다. 사실 이 세 가지 만남 외에도 무수한 만남들이 있으며, 이 모든 만남들은 필연적으로 인간관계 형성으로 귀결되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거미줄처럼 복잡다기하게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곧 성공과 행복의 열쇠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토록 중요한 만남들이 어려워졌습니다. 테스형한테 “만나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 하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물론 가상공간(cyberspace)을 통해 만남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긴 하지만 대면(face to face) 만남은 여러 가지 많은 제한을 받기 때문에 자연히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가족 간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 ‘도대체 이게 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우리가 평소에 별생각 없이 당연한 것으로 누려왔던 것들(normal)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이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입니다. 만남이 힘들어지고 불편해질 때면 저도 모르게 김소월 시인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시가 머리를 스쳐갑니다.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COVID-19 전후로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New Normal 상태를 기원전과 기원후 즉 BC(Before Corona)와 AD(After Disease)로 재치 있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약 20년 전에 9.11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불편을 겪어오고 있습니다. 공항에서 신발을 벗지 않고 혁대도 풀지 않은 채 비교적 수월하게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던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그 여파가 생활 구석구석에 묻어나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삶도 이전과는 사뭇 달라지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습니다. 간혹 편리한 면들도 없진 않습니다. 이를테면, zoom으로 하는 비대면 회의나 재택근무 등은 편리하고 경제적인 절약효과도 있습니다. 멀리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되니 시간과 비용이 절약됩니다. 그렇지만 좀 불편하더라도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며 밥 한 끼라도 함께 먹을 수 있는 그 시절의 일상이 그립습니다. 간혹 교인들 중에는 비대면 예배를 드리니 교회 안에 갈등이 줄어들어 좋다고 비틀어서 조금은 자조적인 투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만나야 정이 듭니다. 안 보면 멀어지게 되는 법입니다(Out of sight, out of mind.).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긴 게 아닐까요.
재산을 불리는 재(財)테크, 시간을 선용하는 시(時)테크도 중요하지만, 요즘에는 원만한 교우관계를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위 ’우(友)테크‘도 이에 못지않게 지혜로운 처세로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 여러 가지 고통이 따릅니다. ’노인 4고‘라고 해서 빈고(貧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 병고(病苦)가 대표적인 고통입니다. 이 네 가지 중에서 고독고(孤獨苦)는 물론 배우자가 없거나 자녀들로부터 소외되는 외로움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친구가 없는 외톨이의 고독도 포함합니다. 늙어서 취미와 소일거리를 함께 나눌 벗들과의 교분을 잘 유지해가는 것도 우리가 힘써야 할 중요한 삶의 한 부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줄이고, 혹 갈등이 생기더라도 속히 해소하고 다시 화목한 관계를 회복하여 유쾌하고 생산적이며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로마서 12:17-18)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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