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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코로나 사태의 교훈



최근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특강을 했던 이 지역의 어느 목사님은 코로나 사태의 교훈을 탐욕과 겸손과 관계라는 세 단어로 요약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이 세 가지 중에서 겸손의 교훈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겸손이야말로 기독교의 최고의 덕목이라고 했습니다. 깔뱅의 『기독교강해』에 기록되어 있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어거스틴의 제자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기독교의 덕목 가운데 으뜸가는 덕목이 무엇입니까?" 그는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두 번째로 큰 덕목은 무엇입니까?" 역시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세 번째는요?" 이번에도 꼭 같은 대답을 되풀이했습니다. 깔뱅은 이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신앙은 곧 겸손이다.”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영국의 성서학자인 앤드류 머리(Andrew Murray)는 『겸손』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겸손이 없었더라면 인류의 구원도 없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겸손이 기독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6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본래 하나님과 동일하신 조물주셨지만 자신을 비워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으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당연히 예루살렘의 궁궐에서 탄생하셔야 했지만 베들레헴 촌구석에서, 그것도 누추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도 갈기를 휘날리는 백마를 탄 채 거창한 왕의 행차를 마다하시고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어린 나귀를 타고 마치 한 편의 코미디와 같은 장면을 연출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생애는 성육신부터 마지막 십자가의 죽음까지 시종 겸손으로 일관된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예수님의 라이프스타일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삶 속에서 겸손을 실천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겸손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타고난 죄성으로 인해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겸손해지기 보다는 교만해지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스스로를 비우고 낮추는 훈련을 꾸준히 해야만 합니다. 겸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스스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 안에 선을 행하려는 자아와 악을 행하려는 자아 즉 두 자아의 갈등 속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가련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하고 장탄식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갈등을 해결하는 한 방법으로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실 수 있도록 스스로 죽는 길을 택합니다(갈라디아서 2:20).

저는 신학교 다닐 때 상담학 교수께서 바로 이 구절을 언급하시면서 자신이 겪었던 일을 말씀하셨던 걸 되새기곤 합니다. 하루는 볼일이 있어 동사무소에 가셨는데 직원이 몹시 무례하게 대하자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하마터면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교수야, 신학교 교수!”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성령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놈이야. 죽음 놈 주제에 뿔따구를 낸다고!?” 마치 한 방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순간적이나마 소위 ‘갑질’을 하려고 했던 자신이 마냥 부끄러워졌습니다.

‘갑질’은 영어로 옮길만한 적절한 단어가 없어 그냥 소리나는 대로 ‘gapjil’이라고 음역해서 사용합니다. 한국인 특유의 행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갑질의 모습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은 섬김을 위한 것인데도 직분을 무기삼아 갑질을 하는 모습들을 대하게 됩니다. 목사나 전도사가 교인들에게, 장로나 권사가 집사에게 은근히 젠체하며 으스댄다면 그것이 바로 갑질에 해당되는 행위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갑(甲) 중의 갑, ‘수퍼 갑’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늘 ‘을’(乙)의 삶을 사셨으며, 이러한 그분의 모습은 세족식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스승께서 친히 십자가의 수난을 예고하셨음에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다툼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철부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평생 잊지 못할 유언과도 같은 교훈을 주실 요량으로 그렇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설령 의도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종들이나 하는 일을 몸소 실천하시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3:12-17)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겸손이 축복의 비결인 셈입니다. 성경의 인생독본인 잠언에는 겸손에 관한 교훈이 많이 나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잠언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다는 뜻인 동시에 사람들이 그 부분에 있어서 취약하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입니다. 그저 몇 구절만 인용해보겠습니다.

(잠언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언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언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코로나 사태는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겸손해지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견줄 게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에 견주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5-6)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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