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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갈등과 분열에서 화합과 일치로



지난 1월 20일에 그간의 긴박한 위기를 넘기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바이든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취임 전 마지막 순간까지 온 국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것은 너무나 골이 깊어진 양당 간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란이 커질 대로 커진 가운데 행정 수반으로 등극한 바이든 대통령도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그래서 그의 취임사의 일성(一聲)도 화합과 일치였던 것은 누구나 쉽게 예상한 바였습니다. 상하원까지 싹쓸이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민주당이지만 앞길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예상에 정권교체로 인한 안도의 표정 속에서 일말의 걱정의 그림자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갈등은 인간관계의 부조화에서 오는 현상입니다. 갈등은 칡(葛)과 등(藤)나무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칡은 나무를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면서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갈등은 영어로 conflict입니다. 이 말은 라틴어 conflictus에서 왔는데, ‘함께’(together)를 의미하는 ‘con’이라는 접두사와 ‘부딪치다’(strike)라는 의미를 지닌 ‘fligere’라는 말이 합성된 단어입니다. 즉 갈등은 ‘strike together’(서로 부딪친다)라는 뜻입니다.

갈등은 인간관계에서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갈등은 내적인 갈등도 외적인 갈등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만 아니라 사람과 사물 혹은 사람과 상황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때로 갈등은 옳고 그름을 떠나 다름으로 인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다른 것’(different)은 반드시 ‘틀린 것’(wrong)은 아니기 때문에 이 양자를 지혜롭게 구분하는 것이 갈등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 스트레스도 적절하게만 활용하면 삶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듯이, 갈등도 지혜롭게만 대처한다면 독이 아니라 되레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줄곧 평행선으로 달리는 경우입니다. 이럴 때는 타협이라는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되어 피차 손해를 보게 됩니다. 특히 흑백논리에 길들여져 있는 한국인들은 타협을 마치 회색분자의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생각해서 부정적인 행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보아도 이 세상은 흑과 백보다는 매우 다양한 회색의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자기의 옹고집을 꺾고 적절한 선에서 양보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일 수 있습니다. 영어식 표현을 빌리자면, ‘meet halfway’ 즉 ‘중간에서 만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마저도 안 되면, 미국 사람들이 “We agree not to agree.“(우리는 서로 동의하지 않기로 동의했습니다)라는 식으로 갈등을 재치 있게 봉합하듯이 우리도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각자 자기의 길을 가면서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이 같아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즉 비록 생각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는 뜻입니다.

요즘 세상 풍조가 너무나 급속하게 바뀌다 보니 심지어 쌍둥이도 세대차를 느낀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이미 오래 전 야곱과 에서 형제는 한 배에서 난 쌍둥이라도 너무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설령 세상 풍조가 빠르게 바뀌지 않아도 모든 사람은 제각기 개성이 다르고 취향도 다릅니다. 또한 타고난 기질과 자라온 환경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도 나와 꼭 같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기대난망입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의 의견이 존중받기를 바라듯 상대방의 의견도 존중해줄 줄 아는 것이 갈등을 줄이며 피하는 현명한 처신일 것입니다.

갈등해소를 위해 의사소통(communication)이 자주 언급됩니다. 그저 서로 대화만 한다고 해서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소통과 관련해 자주 예로 제시되는 것이 개와 고양이의 의사 전달법입니다. 개는 반갑다는 표시로 꼬리를 치켜들고 좌우로 살랑살랑 흔듭니다. 그러나 위협을 느끼거나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싶을 때는 꼬리를 내립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개와는 정반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개와 고양이는 사귀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온 숙어인지는 모르지만, 영어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 “It‘s raining cats and dogs.”라고 표현합니다. 아마도 여러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서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난장판을 만드는 장면을 연상하면서 만들어낸 숙어가 아닐까 혼자서 추측해보았습니다. 미국에서 살다보면 문화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낳을 수 있는 소지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비근한 예로, “이리 와!” 할 때 미국인들과 한국인들의 손 제스처는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자칫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원활한 의사소통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을 매순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갈등을 줄이고 분열에서 화합으로 나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갈등이 생기면 삶이 고달파지고, 분열이 생기면 힘이 분산됩니다. 갈등과 분열은 소중한 삶의 에너지를 소진하게 만들며 피차 멸망의 길을 재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14-15)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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