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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예수님의 ‘임마누엘’ 신앙을 본받아



기독교에는 주로 예수님의 생애를 중심으로 1년 단위의 교회력(敎會曆)이 있는데,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이 교회력을 중심으로 목회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야 기독교 신앙 내용을 치우침 없이 골고루 지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년에는 지난 주일에 대강절(待降節)이 시작되어 성탄절 전까지 네 주간이 대강절입니다. 대강절은 대림절(待臨節) 또는 강림절이라고도 하는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Advent라고 하는데, 이 말은 ‘오다’ 또는 ‘도착’을 의미하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물론 그 말의 의미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待望)한다 뜻이지만, 이 절기에 교회는 예수님의 초림을 회상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재림신앙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12월은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는 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월 둘째 주일은 전 세계가 지키는 성서주일인데, 예수님은 성경의 주인공이시기 때문에 성서주일이 이 절기 중에 들어있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오늘은 임마누엘 되시는 예수님 그리고 그 분의 임마누엘 신앙에 대하여 상고해보려고 합니다. 히브리어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God with us)”라는 뜻입니다. 천사가 예수님의 수태고지(受胎告知)를 하면서 그 분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할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마태복음 1:23).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만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과 함께 거하셨기 때문에 이 이름은 더없이 적합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成育身) 자체가 임마누엘이지만, 그 분은 우리의 삶 속에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 임마누엘 신앙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모래 위의 발자국(Footprints in the Sand)’이라는 신앙시가 있습니다. 매리 스티븐슨(Mary Stevenson)이 지은 시로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입니다. 저도 이 시를 무척 좋아하는데, 오래 전에 우리 아이들이 저에게 이 시가 적힌 머그를 선물해주어서 지금까지 애지중지하며 제가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매번은 아니지만 이 머그를 사용할 때마다 이 시의 내용을 되새겨보곤 합니다. 이 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주님과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지나온 삶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데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있었습니다. 하나는 자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 이르자 발자국이 한 쌍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그의 생애에 가장 힘들고 슬픈 때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항상 저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정작 제가 힘들 때 주님은 왜 저를 버리셨나요?”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한 쌍의 발자국만 보이는 때는 내가 너를 업고 걸었던 때란다(The times when you have seen only one set of footprints is when I carried you).”

이 시의 저자는 대공황기에 펜실베니아 주에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도 일자리를 찾아 6남매를 남겨둔 채 집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춤을 배워 길거리에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지내던 중 열 네 살 되던 1936년 겨울 어느 날 집안에 갇혀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에 눈 위에 선명하게 찍힌 고양이 발자국을 보고 영감을 얻어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미국에 수잔 앤더슨이라는 여인이 어느 날 눈 수술을 받다가 그만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의 직장 출퇴근을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얼마 후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계속 이럴 수는 없으니 내일부터는 당신 혼자 출퇴근해야겠어요."

그 말에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낀 그녀는 이를 악물고 혼자서 힘겹게 출퇴근을 했습니다. 여러 번 넘어지며 서러운 눈물도 흘렸지만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버스를 탔을 때 운전기사가 무심코 한 마디 건넸습니다.

"부인은 좋은 남편을 두셔서 참 좋겠어요. 매일 한결같이 부인을 등 뒤에서 돌봐주시네요"

알고 보니 남편은 매일 아내가 버스를 타면 같이 타서 몰래 뒷자리에 앉아 아내의 출퇴근을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때로는 넘어지고, 서러운 눈물도 흘리며, 상처도 받고 고독도 느끼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나의 등 뒤에서 조용히 나를 지켜 보호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에 안심이 될까요?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 신앙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안심시키시기 위해 친히 임마누엘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말기에 제자들이 당국의 처벌을 두려워한 나머지 지레 겁을 먹고 예수님을 떠나 다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도 인성을 지니신 분이라 아마도 배신감과 함께 홀로 남겨졌다는 적막감과 고독감을 느끼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이러한 감정들을 극복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32-33)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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