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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공급해주시는 하나님



저는 언젠가 ‘4G의 하나님’이란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하나님을 Guide(인도자), Guard(보호자), Guarantor(보증인), 그리고 Grantor(공급자)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대학교에 다닐 때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그랜트(grant)의 혜택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grant는 되갚지 않아도 되는 무상의 보조금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되갚지 않아도 되는 grant의 혜택을 베풀어주시는 무상의 공급자, ‘Grantor’이십니다. 사실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모든 필요들이 근원적으로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칭하는 말 중에 ‘여호와 이레’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비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많은 grant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주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요르단 성지순례를 하면서 황량한 광야 길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때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황량한 광야에서 200만 명은 족히 되었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도 굶지 않고 40년 동안 먹고 마실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공급의 섭리가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섭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후에 나 몰라라 그냥 뒷짐만 지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피조물들을 위해 보존의 섭리를 베풀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섭리(providence)라는 말은 ‘공급하다’(provide)라는 말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에 대하여 매우 실감나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미물(微物)까지도 세심하게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 덕분에 먹이사슬을 통해 모든 생물들이 생존에 필요한 온갖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라는 말은 창세기 22장 14절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하시기 위해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번제란 제물을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정말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이삭은 그냥 외아들이 아니었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이요, 하나님께서 장차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하나님의 요구는 무리한 요구였고, 따라서 아브라함으로서는 순종하기가 쉽지 않은 명령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그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후 인간적인 번민에 괴로워했을 것이며, 모라아산으로 떠나는 날 밤에는 밤잠을 설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모든 인간적인 생각을 뒤로 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산으로 갔습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번제에 쓸 장작을 짊어지고 가던 이삭이 불과 칼을 손에 들고 가시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아버님, 불도 있고 칼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정작 번제할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때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드디어 결정적인 운명의 순간이 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꽁꽁 묶어 단에 쌓은 나무 위에 올려놓고 칼로 내려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여호와의 사자의 소리가 들립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도 이상해서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수양 한 마리가 수풀에 뿔이 걸려 꼼짝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으로 주신 번제물인 줄 알고 그 수양을 잡아서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번제물을 예비해 주신 것에 감사해서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여호와 이레’라는 하나님의 칭호가 생겨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친히 예비해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서는 이런 의미를 살려 ‘여호와 이레’를 ‘The LORD Will Provide’라고 첫 글자를 대문자로 써서 의역(意譯)한 성경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경험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많은 경우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 무심코 지나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 중에 다양한 상황에서 여호와 이레를 경험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그가 2차 선교여행을 하던 중 유럽 전도의 첫발을 띠게 되었을 때 빌립보라는 도시에 가게 되었습니다. 생면부지의 이국땅에서 정말 막막했겠지만 하나님은 믿음이 돈독하고 헌신적이며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루디아라는 한 여인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이 여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그 집에 머물면서 빌립보 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이레’의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맘껏 누리며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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