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프로필
뉴욕 K 라디오 방송위원, 재외동포저널 이사, 하이유에스코리아 칼럼니스트
미국내 백신 접종 의무화의 멀고도 먼 길

세계 주요 국가들은 최근 델타 변이 확산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6일 오전 기준 최근 7일간 평균 하루 확진자는 9만8천여 명으로, 2주 전에 비해 149% 늘었다. 입원 중인 환자도 5만여 명으로 2주 새 92% 늘었다. 확진자와 입원자 수로만 보면 지난 2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그런가운데 백신 접종만이 이를 줄일 수 있는 열쇠라고 여겨지지만 지난해 마스크 착용 여부를 두고 두 쪽으로 갈라져 싸웠던 미국인들이 올해는 백신 접종을 두고 국론 분열에 가까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 롤리시 중심가. 간호사 등 의료진을 비롯한 200여 명의 시위대가 주의회 건물과 주지사 관저 등을 돌며 시위를 벌였다. 지역 언론들에 따르면 시위대는 이날 병원 측이 직원들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따르지 않으면 해고한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손에 들린 피켓에는 ‘나의 몸은 나의 선택’ ‘강제 백신 접종=의학적 강간’ 등의 표현이 담겼다.
이 지역 대학병원들은 최근 “환자와 직원,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다”면서 직원들에게 백신을 맞으라고 요구했다. 주정부 방침도 다르지 않다. 로이 쿠퍼 주지사(민주당)는 이날 브리핑에서 시위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실망스럽다. 환자 가까이서 일하는 의료진이라면 백신을 맞는 것은 책무”라고 강조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다시 많이 늘면서 최근 백신 접종에 대한 압박이 커지자 이에 반발하는 시위도 잦아지고 있다. 반면 백신 접종자들은 최근의 코로나19 재확산 원인을 비접종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레이철 역으로 잘 알려진 배우 제니퍼 애니스턴(52)은 3일 공개된 미국 패션지 ‘인스타일(InStyle)’과의 인터뷰에서 “여전히 백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일상에서 백신 접종 거부자들과의 관계를 끊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대표적 친 민주당 언론사 CNN은 백신을 맞지 않고 출근한 직원 3명을 해고했다. CNN은 모든 직원에 대해 의무적으로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도록 하는 사내 규정을 마련한 바 있다. 제프 저커 CNN 사장은 5일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 같은 사실을 전했다. 다만 이번에 해고된 직원들의 소속 등 자세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저커 사장은 “지난주 백신 미접종 상태로 사무실에 출근한 직원 3명을 확인했고, 모두 해고 처리됐다”며 “분명히 말씀 드리는데, 우리는 백신 접종에 대해 무관용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몇 주 후에는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증명서를 보여주는 것이 공식 절차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최근의 조사 결과들을 보면 백신 접종 의무화를 두고 미국인들의 여론은 팽팽히 맞서 있다. 미국 CNBC 방송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9%가 의무화에 찬성한 반면 46%는 반대했다. 찬성과 반대 비율의 차이가 오차범위 내였다.
백신 효과에 대한 인식도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이날 비영리단체 카이저패밀리재단이 공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백신을 맞지 않은 성인의 절반 이상(53%)은 ‘백신을 맞는 것이 코로나19에 걸리는 것보다 오히려 건강에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백신을 맞은 성인의 대부분(88%)은 반대로 답했다. 또 미접종자의 57%는 언론이 팬데믹의 심각성을 과장해서 보도한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 백신 접종자 중에서는 17%만 그렇게 생각했다.
극명하게 갈리는 생각의 차이를 반영하듯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양상도 나타난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가 성인 999명에게 ‘코로나19 재확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물었는데 백신 접종자의 79%가 ‘미접종자 책임’이라고 했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의 감염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기 때문에 이들이 최근의 재확산에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접종자들은 외국에서 온 여행객(37%), 주류 언론(27%),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21%) 등을 주로 꼽았다. 자신들 같은 미접종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응답은 10%밖에 되지 않았다.
이처럼 백신과 관련해 여론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각 기업도 직원들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할지를 두고 고심에 빠졌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데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다가 이에 반대하는 직원들이 떠날 수도 있고 지방정부들은 줄을 잇게 될 소송으로 여력이 분산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