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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일 칼럼

강남중 기자

안동일 프로필


뉴욕 K 라디오 방송위원, 재외동포저널 이사, 하이유에스코리아 칼럼니스트



자신의 부와 명예와는 상관없이 기꺼이 감동하는 올림픽



우려 속에 막을 연 도꾜 올림픽이 막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열흘 전까지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모든 미디어들이 올림픽을 다루고 만나는 사람마다 올림픽을 이야기한다. 선수들이 보여주는 멋진 모습과 투지는 그간의 의구심이 머쓱할 정도로 경기에 빠져들게 한다.

이번 대회서 우리는 유난히 메달을 못 딴 선수들의 선전에 박수를 치면서 격려하고 있다. 역경과 불리한 조건을 딛고 일어선 선전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육상에서 거둔 한국 우상혁의 높이뛰기 4위와 중국 쑤빙톈의 100m 달리기 9초83 기록이다. 수영의 황선우 선수도 마찬가지다. 동양인은 신체 조건 때문에 몇몇 종목에선 근본적 열세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100m 달리기와 높이뛰기가 특히 그랬다. 이 통념도 깨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쑤빙톈은 키 172㎝인 전형적 동양인 체형이지만 짧은 다리를 번개처럼 놀리며 폭발적으로 내달렸다. 높이뛰기는 균형 잡힌 장신이면서 근력도 탁월해야 한다. 동양인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상혁은 발 크기가 다른 ‘짝발’ 핸디캡까지 안고 메달 문턱까지 갔다. 황선우는 독특한 영법으로 아시아기록을 내면서 1인자 드레샐의 경탄을 받았다.

1896년 세계 평화의 가치를 좇아 시작된 근대 올림픽은 근래들어 정치·외교 도구화, 상업화라는 일각의 맹비판과 비난을 받아 왔지만 그래도 스포츠를 통한 화합이라는 근간은 아직 크게 유효하며 이를 통한 부대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가장 잘 상징하는 행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이전 두 대회가 반쪽으로 치러 졌지만 서울 대회서 복원이 되면서 그 동안 대한민국과 교류가 없던 공산 국가와의 관계가 이 대회로 인해 급속도로 개선되었다. 88 서울 올림픽을를 계기로 도시 인프라 구축이며 정치 경제 국민 의식 모든면에서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는 사실은 자타가 공인 하는 일이다.

일단 올림픽은 국민을 나아가 지구폰 식구들을 하나로 만든다. 가슴에 자국기를 달고 경기장에 선 선수를 보면 잠시나마 한뜻으로 국민들이 승리를 염원하게 되고 상대에 대해서도 알게 한다.

더욱이 이제는 올림픽에 있어서 ‘내셔널리즘’으로 대표되는 집단 정체성은 이제 꼭 필연적이지 않다. 집단 정체성은 일정 기준에 따른 소속감으로 형성되는데 이때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범주화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단다. 학자들은 집단 유대를 형성하는 수단으로 문학과 함께 언론 신문의 역할을 강조했다. 같은 언어로 매일 공통된 기사를 읽으며 사회적 관점을 공유하는 행위가 같은 국가(nation)에 속해 있다는 상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과 같은 큰 이벤트로 공동체의 실재를 확인해 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IT의 발전으로 이번 올림픽은 유난히 영토나 국적 등의 경계도, 언어와 시간의 제약이 급속도로 옅어 졌다. 신유빈 선수와 겨룬 룩셈부르크 탁구 대표팀 니시아렌 선수가 “오늘의 나는 내일보다 젊다”며 “계속 도전하라”고 한 말에 한국 계정들이 앞다투어 ‘좋아요’를 누른다. 여자 선수들이 유니폼을 선택할 자유에 대해 말하는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에 세계의 계정이 격한 응원 메시지를 보낸다. 잘생긴 수영스타 드레셀의 팔로워는 오바마를 넘어섰다. 지구 공동체가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상상한 대로 가고 있다고 확인되는 순간이다.



여자배구 한일전이 한국의 승리로 끝난 이후 일본 소셜미디어엔 김연경에 관한 글이 신앙고백처럼 줄줄 올라왔다. 경기가 끝난 직후 트위터에서는 김연경의 일본어 해시태그가 순식간에 7000건을 돌파, 실시간 트렌드 1위를 차지했다.

“일본인이니까 당연히 일본이 이기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경기를 보면서 한국의 김연경도 응원했습니다. ‘욘사마가 코트에서 구르고 울부짖는 걸 보면서, 저런 선수가 있는 팀이라면 져도 납득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네티즈의 고백이다. 난데없이 식빵언니의 식빵이 다시 유행이다.

이런 가운데 남자 양궁 개인전 8강전에서 1점 차이로 석패한 김 우진선수의 인터뷰 내용이 연일 화제다. “이제 다쐈다. 더 이상 쏠 화살이 없다. 스포츠는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기에 언제나 바뀌고, 그래서 열광할 수 있다.” “내가 쏜 거다. 8점을. 누군가가 쏜 게 아니라 내가 잘못 쏜 거다… 우선 그는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단다.

남을 위해서만 또는 남의 시선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인생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에 관한 수많은 격언 중에 올림픽은 “4년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를 ‘올림픽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꾸준한 훈련이 필수적’이라는 정도로만 이해해서는 올림픽의 감동이란 화두를 제대로 포착한 것이 아니다.

이 화두란, ‘매일 매일 이란 과정을 즐기면서 성장하기 위해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성취도 하고 좌절도 하는 것에서 우리 일상도 감동이 있다는 말과 통할 것이다.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위해 자신만의 이익을 쫒는 각박한 이 세태에 자신의 부와 명예와는 상관없는 일에 관심 쏟고 열광하고 기꺼이 감동하는 심성이 남아 있는 한 전염병과 환경 파괴가 범람하고 있다지만 지구촌 인류의 미래는 아직 절망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