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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국칼럼

강남중 기자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미국인들의 정체성은 뭘까?: 정직

거짓말하면 언젠가 손해본다


# 재수없는 날인줄 알았는데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그로서리에서 쇼핑을 하고 나오니 차의 앞부분에 기다란 흠집이 나 있었다.
옆에 주차했던 누군가 자신의 차를 후진시키다 긁어놓은 것이다.

이미 옆 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찌그러지거나 흠집이 난 자동차를 고치는 바디 숍에 가면 몇 백 달러는 그냥 날아갈 판이었다.

“오늘은 재수 없는 날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차를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앞 유리창 와이퍼에 조그만 쪽지가 꽂혀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내가 당신 차를 긁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니 이 전화번호로 연락 바랍니다.”

뜻밖이었다. 아무도 본 사람도 없고 요즘처럼 CC-TV도 없을 때였다. 양심은 찔리겠지만 그냥 가도 무방했을 터이다. 아, 이게 미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살면서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면 언젠가 손해를 본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민 온 지 오래 된 한인들을 만나면 격언처럼 하는 말이 있다.

“미국 사람들이 어수룩하게 보이지만 남을 속였다가는 언젠가는 죄 값을 받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


# 덜레스 공항에서 생긴 일

미국 공항의 입국 심사는 까다롭기 정평이 나 있다. 미국의 워싱턴으로 오는 관문인 덜레스 공항도 예외는 없다.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13시간 가까이 비행하면 이 공항에 도착한다. 다시 특이하게 생긴 공항 셔틀을 타고 입국장으로 이동하면 셀프 심사대를 거친 후 국토안보부의 이민국 직원과 마주하게 된다.

입국심사에서 꼭 묻는 말이 있다. 여행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고 가방에 현금 1만 달러 이상이나 반입해서는 안 되는 농축산품이 있는 건가이다.

덜레스 공항의 대한항공 창구
이 순간 그가 워싱턴에 중요한 사명을 띠고 온 국회의원이든 재벌 회장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 물론 미국의 연방 하원의원이든 고위관료도 마찬가지이다.

몇 해 전의 일이다. 덜레스 공항으로 입국하던 L씨는 입국 심사대에서 “가방에 식품류가 들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망설였다.

세관신고서에는 기재하지 않았지만 가공만두와 몇 가지 식품류가 가방 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L씨는 조마조마했지만 “없다”고 대답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2차 심사대로 넘겨졌고 가방 안에서 가공만두가 나왔다. L씨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관세국경보호청(CBP) 직원은 돼지고기 성분이 포함된 가공 만두는 반입금지 품목이라는 설명과 함께 압수조치를 내렸다. 그리고 벌금 몇 백 달러를 부과했다. 압수에서 그칠 것이었는데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반입금지 식품류를 보유했는지 여러 차례 물었는데 계속 없다고 거짓 대답해서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은 꼴이었다.

덜레스 공항의 입국장

공항 직원들에 따르면 1만 달러를 초과한 돈을 갖고 오다 신고를 않아 적발되는 사례도 잦다 한다. 자진신고를 하면 얼마든지 많은 현금을 반입할 수 있는데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죄지은 것도 아닌데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거짓말 한 죄로 현금은 압수되고 어떨 때는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미국인들에게 거짓말은 용납할 수 없는 비윤리적 행위인 것이다.

피트니스 센터



# 피트니스 센터에서 겪은 일

미국인들에게 정직(Honesty)은 금과옥조다. 살아가면서 미국인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싫어하는지, 그들이 정직한 행동을 얼마나 추구하는지는 생활 속에서 누구든 쉽게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몇 년 전에 멤버십을 갖고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겪은 일이다. 탈의실 의자에 누군가가 비싼 손목시계를 놓아두고 간 게 눈에 띄었다. 1시간 30분 동안 운동을 끝나고 돌아오니 시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남의 물건이니 아예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마트나 의류점, 전자제품 판매점 등에서 물품을 샀다 반품하러 가면 군말 없이 바꿔준다. 아예 반품 코너도 있다. 몇번 사용했을 법한데도 그냥 돈을 내준다. 고객의 말을 그대로 믿으려 하기 때문이다.


# 힐러리가 낭패를 겪은 이유


미국인들이 얼마나 정직함에 집착하는가 하면 힐러리 클린턴이 좋은 본보기가 된다. 2016년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일 때였다. 월스트리트저널과 NBC 뉴스가 여론조사를 했다.

공화당에서는 카지노와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가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유권자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은 65%나 됐다. 클린턴 전 장관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유권자도 56%에 달했다. 그런데 눈길을 끈 건 정직과 솔직함을 묻는 설문이었다.

트럼프가 35%를 받은데 비해 클린턴은 19%에 그쳤다. 미국인들은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대해서 정직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두 후보가 단지 다르다는 데 그치지 않고 정반대 쪽에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클린턴 전 장관은 신뢰받지 못하는 베테랑으로, 트럼프는 다소 무서워 보이는 자신만만한 신참"이라고 해석했다.

클린턴은 부정직하다는 이미지를 선거 내내 지울 수 없었다.

한번은 이웃집에 사는 고등학생의 친구들이 놀러왔기에 물어봤다.
“힐러리 어떻게 생각해?”

고등학생들은 한마디로 답했다. “거짓말쟁이!”

그 선거에서 젊은이들은 70대 중반의 진보 정치인 버니 샌더스에게 마음을 주었다. 클린턴은 결국 예상을 뒤엎고 낙선하고 말았다.

잘 알다시피 1970년대 초반 워터게이트 사건이 미국을 뒤흔들어놓았을 때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것도 도청 자체보다는 그것을 부인한 거짓말 때문이었다.




# 정직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

조셉슨윤리재단이란 비영리단체가 있다. 이 기관에서 ‘미국 청소년들의 윤리문제에 관한 성적표’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학생들의 정직함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들이 들어 있다.

학생들 중 93%는 그들의 부모가 손해를 보더라도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하는 걸 원한다고 했다. 또 손해를 보더라도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92%로 나타났다.

물론 생각과 행동은 다를 수 있다. 실제 학생들의 절반가량은 시험 볼 때 치팅(Cheating)이란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그래도 그들에겐 정직이란 가치관이 짙게 배어 있다.


# 미국인의 정체성

대개 한 나라, 한 민족에게는 고유의 정체성이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을 특징짓는 성격 같은 것이다. 한국인의 정신에 충과 효 같은 유교 사상이 있다면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에는 이 정직이란 가치가 뿌리박혀 있다.

미국인의 의식의 저류에 흐르는 정직함이란 정신적 전통은 미국사회가 청교도(Puritan 정신(Puritanism)의 바탕 위에 세워졌다는 종교적 배경과도 연관이 깊다. 청교도의 덕목은 근검과 절약, 정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심성에 자리 잡은 정직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흐릿해지고 있다. 국가의 지도자마저 가짜뉴스를 당연한 듯 양산하고 있다.

변화하는 미국사회와 미국인들을 보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미국의 몰락은 아마 이 가치관의 상실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