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신용없인 못 사는 나라: 미국인의 크레딧 점수

#자동차 살 때의 경험
미국에 갓 온 A는 우선 자동차부터 마련해야 했다. 차가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A는 차를 구입하려고 혼다자동차 딜러에 들렀다. 에이전트와 차들을 둘러본 후 마음에 드는 색깔과 종류를 골랐다. 흰색 어코드였다. 차량에는 2만8천 달러란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그는 5천 달러를 내고(Down pay) 나머지는 융자를 받아 매달 갚기로 하였다.
에이전트가 그를 재정 담당자에게도 데려갔다. 융자를 받기 위해서다. 그는 소셜 시큐리티(Social Security) 번호를 요구했다.

한국에서 갓 온 그에게 소셜 번호가 있을 리 없었다. 재정 담당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크레딧이 하나도 없네요. 이럴 경우 당신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요. 차 값 모두를 현금으로 내든지 아니면 가장 나쁜 이자율을 선택해야 해요.”
문제는 크레딧이었다. 아무런 크레딧도 없는 그에게 선뜻 융자를 해주려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는 15%의 높은 이자율을 내기로 하고 차를 구매할 수 있었다. 5년 동안 갚는 조건이었다.
그 결과 A씨는 매달 550달러를 내야 했다. 만약 그가 크레딧 점수(credit score)가 좋았다면 매달 400달러만 내도 됐었다. 결국 크레딧 때문에 매달 150달러를 더 내는 것이다.

명품으로 알려진 롤스로이스 자동차
#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미국에 오면 가장 낯설고 당황스러운 게 바로 이 크레딧(Credit)이다.
신용을 뜻하는 이 크레딧 점수는 미국인에게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단어다. 집을 살 때도, 차를 구입할 때도, 하다못해 백화점 카드를 만들 때도 적용된다.
또 크레딧 카드를 만들려고 해도 점수가 어느 정도 되지 않으면 아예 발급을 해주지 않는다. 한 사람의 경제적 삶이 크레딧 점수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2달러 지폐 아래에 In God We Trust란 글귀가 보인다.
# 미국 돈에 쓰인 “In God We Trust”의 의미
미국인들에게 정직과 함께 따라다니는 단어가 신용(크레딧)이다. 1달러이든 20달러이든 미국의 지폐를 보면 밑 부분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In God We Trust”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하나님보다 ‘트러스트’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힌다.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인간들도 신뢰를 갖고 살아야 한다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다.
이 표어는 100달러 지폐는 물론이고 1센트 동전에도 새겨져 있다. 돈을 꺼낼 때마다, 돈을 건넬 때마다 사람들은 그 ‘믿음’이란 단어를 새겨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미국인들에게 ‘신뢰(trust)’라는 단어는 중요하다.
미국사회에서 신용도가 낮으면 그에 따른 물질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20달러 지폐에도 In God We Trust란 글귀가 보인다.

# 집 살 때의 차이
이웃에 인도계 이민자가 살았다. 남자는 인도에서 상류층인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으로 IT 기업에 다녔다.
그들이 예쁜 타운 홈을 사서 이사를 가더니 집들이에 초대를 해주었다. 그는 큰 교훈을 얻었다며 집을 산 과정을 이야기해주었다.
지은 지 5년 된 그 집은 50만 달러짜리였다. 그는 10만 달러를 내고(다운페이) 나머지는 융자(모기지 론: Mortgage Loan)을 받았다.
그런데 그의 크레딧 점수는 650점밖에 안되었다. 통상 미국인들의 평균 점수인 700점대 초반에 못 미치는 것이다.

주택을 매매한다는 사인이 집앞에 붙어 있다.
그는 40만 달러의 모기지 론을 30년간 갚아나가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매달 2천 달러의 페이먼트(Payment, 융자금 상환)를 내야 한다.
만약 그의 크레딧 점수가 750점 가량 되었다면 그는 매달 1,750달러가량만 내면 되었다. 크레딧 점수가 낮아 매달 250달러나 더 내게 된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크레딧 점수가 왜 그리 중요한 지 이제야 알았어요. 지금부터라도 크레딧을 잘 관리해서 나중에 점수가 좋아지고 이자율이 더 내려가면 재융자를 받든지 해야겠어요.”
집을 산 기쁨에 젖어 있던 그는 크레딧 점수 대목을 말 할 때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매달 내는 융자상환금 액수는 모기지 이자율에 의해 정해지는데 그 이자율을 결정하는 게 바로 크레딧 스코어이기 때문이다.

가령 크레딧 스코어가 미국인 평균인 720점보다 나은 760점인 사람과 620점인 사람의 이자율 차이는 약 1.6% 차이가 난다. 그러면 매달 두 사람은 똑 같은 조건의 자동차나 집을 샀을 때 매월 내야 할 돈이 300달러나 차이가 난다.
이를 10년으로 치면 3만6천달러나 더 내는 것이다. 30년이면 10만 달러 이상을 더 내야 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 크레딧이 없으면 겪는 불편
그만큼 크레딧 점수는 바로 돈이다. 크레딧이 나쁘면 엄청난 금전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아파트를 월세로 빌리려 해도 크레딧 점수가 제대로 안 되면 아예 렌트를 해주지 않는다. 남의 집을 렌트 하려 해도 반드시 크레딧 스코어를 들여다보고 점수가 나쁘면 계약 자체를 해주질 않는다.
크레딧 카드도 마찬가지다. 크레딧 점수가 나쁘면 카드 자체를 발급해주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미국에 처음 와서 크레딧 점수가 없는 사람들은 신용을 쌓을 때까지 거래은행의 데빗 카드(Debit Card)나 시큐어드 크레딧카드(Secured Credit Card)를 신청해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불편을 겪게 된다.

데빗카드는 은행의 계좌에 있는 돈만큼만 쓸 수 있으며 시큐어드 카드는 일정 금액을 예치하고 그 금액을 담보로 발급받아 사용하는 것이다.
마침내 크레딧 카드를 받았어도 처음에는 사용 한도액을 1천 달러 이하로 아주 낮게 책정해준다. 그러다 신용기록이 쌓이고 점수가 올라가면 한도액을 점차 높여준다. 나중에는 돈 쓸 일도 없는데 수만 달러까지 한도액이 올라간다.
# 크레딧 점수 쌓으려면
크레딧은 그 사람이 얼마나 약속을 잘 지키는가를 보는 기록이다. 그래서 그가 갖고 있는 은행의 돈이 아무리 많다 해도 신용점수는 0점에 불과하다.
크레딧을 착실히 쌓아나가야 미국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인들은 크레딧 관리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다.

백악관 옆에 있는 미국 재무부 건물
그 사람이 렌트비나 전기세, 전화요금, 개스비 등 유틸리티 요금을 얼마나 꼬박꼬박 잘 냈는지를 본다. 자동차 페이먼트를 밀리지 않고 제때에 잘 냈는지를 점검한다.
물론 한 번 정도 밀린 것은 눈감아 주지만 몇 번 이상 밀리면 크레딧 점수는 떨어지고 만다. 또 크레딧 카드에 빚이 많거나 너무 많은 카드를 신청해 사용하거나 이를 제때 갚지 않아도 점수는 내려간다.
오랜 기간 돈을 납부하는 걸 잘 내야 신용이 쌓이는 것이다.
# 공평사회
이 크레딧 점수를 책정하고 관리는 정부가 직접 하는 게 아니다. 미국에는 에퀴팩스(Equifax), 트랜스 유니언(Trans union)과 익스페리언(Experian)이란 3대 회사가 이를 관리한다.

미국 연방대법원 건물 위에 법앞에 평등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미국에서 크레딧 점수는 신용의 결과이자 차별 없는 사회의 한 표증이다.
내가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라 해도 크레딧 점수가 나쁠 수 있으며 한 달에 1천 달러밖에 벌지 못하는 가난뱅이라 해도 얼마든지 좋은 크레딧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적어도 신용에 있어 미국은 공평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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