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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국칼럼

강남중 기자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미국에서는 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놓았을까?: 검찰과 경찰의 관계


페어팩스 카운티의 경찰관들

LA 경찰들의 24시를 그린 ‘사우스 랜드’, ‘더 루키’ 그리고 ‘리썰 웨폰’, ‘실드’...
왜 미국에서는 경찰 드라마가 많은 걸까?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왜 검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많은 걸까. 그 차이가 바로 한국과 미국의 검찰, 경찰의 차이라 할 수 있다.

# 검사장 선거 출마자들의 변
2019년 워싱턴 인근인 페어팩스 카운티의 검사장 선거가 열렸다. 인구 105만 명인 페어팩스 카운티의 검찰청에는 검사장을 제외하고 총 33명의 검사가 있다.
그 중 검사장은 주민들이 선거로 뽑는다. 정치로부터의 간섭을 피하고 독립성을 보장하려는 장치다.

2019년 페어팩스 카운티 검사장 선거에서 당선된 스티브 데스카노.
민주당 측에서는 현역 검사장을 경선에서 제치고 올라온 스티브 데스카노 후보가 출전했다.
“우리 집은 블루칼라(Blue Collar)로 대변되는 노동자 집안으로 우리 집에서 내가 처음으로 대학을 간 사람입니다.”
그는 스스로 흙수저 출신임을 공언했다.
그와 맞붙은 상대는 무소속의 조나단 파헤이 후보였다. 그는 이 동네 토박이로 연방 버지니아 동부지검에서 17년을 근무하다가 출마를 위해 검사직을 그만뒀다.
두 후보가 내건 슬로건은 좀 대조적이었다.
데스카노 후보는 “유색인종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파일링 수사와 기소행위를 근절하고 경미한 범죄의 경우 불기소 처분을 내리겠다”며 공정한 기소를 다짐했다.
파헤이 후보는 “검사장은 주 의회가 만든 법에 따라 법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검찰이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며 검찰의 탈정치화를 내세웠다.

검사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나단 파헤이 후보.

검찰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공약으로 내건 두 사람의 대결에서 승자는 데스카노 후보였다. 민주당 강세인 지역에서 어찌 보면 그가 당선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두 후보 모두, 검사의 역할에 대해서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했다. “나쁜 사람들을 기소해서 감옥에 집어넣는 것.” 버지니아 주 의회가 만든 검찰의 임무는 범죄자의 기소라는 것이다.



# 경찰서장은 '군수'가 임명한다
검사장에 비해 페어팩스 카운티의 경찰서장은 카운티의 수퍼바이저가 임명한다. 수퍼바이저란 일종의 군수와 같은 행정의 최고 책임자로 주민 선거로 선출된다.
주민들이 뽑은 그 수퍼바이저가 그 지역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국장을 임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지역의 행정의 수장이 경찰국장을 임명하는 시스템이다.

2019년 페어팩스 카운티 수퍼바이저회 의장 선거에서 당선된 제프 맥케이(왼쪽 두번째)가 축하연에서 기뻐하고 있다.
경찰서장은 페어팩스 카운티내 1,400명의 경찰관을 지휘해 105만 주민이 사는 카운티의 치안 일선을 담당한다. 해당 경찰국 내에서 승진하기도 하고 외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경찰관을 영입하는 경우도 있다.
2013년 내부 승진을 통해 부임한 에드윈 로슬러 주니어 경찰서장은 7년째 장수하고 있다.
그는 경찰의 임무에 대해 “범죄예방과 함께 범인을 잡는 수사”라고 강조한다. 범죄 수사를 통해 안전한 도시를 만든다는 것이다.

# 경찰과 검찰의 역할의 차이
검사장 후보들이 말했듯이 검찰의 역할은 ‘기소’이며 경찰서장이 언급하듯 경찰의 역할은 ‘수사’다.
기소와 수사의 분리. 이게 바로 미국 검찰과 경찰의 근본적인 역할 차이다.
수사는 경찰이 전적으로 맡고 검찰의 업무는 기소에 한정돼 있다. 즉 검사는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기소 후에는 재판에 출석해 피고의 범죄혐의를 입증해내는 게 하는 일이다.
한국처럼 검사가 직접 수사를 진행할 수 없으며 경찰의 수사결과를 토대로 보강을 요청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래서 검찰에 자체 수사 인력이, 특별한 영역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경찰이 전담 수사를 통해 용의자를 잡으면 검찰은 기소를 하는 것이다. 한국은 영장 청구를 검찰이 하지만 미국은 수사한 경찰이 각종 영장을 판사에게 직접 청구한다. 두 조직의 역할이 엄격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경찰관들이 주민들을 돕고 있다.



워싱턴 DC 경찰국에 베테랑 형사인 조셉 오 경관이 있다. 그는 검찰과 경찰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미국 경찰과 검사는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입니다. 서로 마주쳐야 박수를 치는 것처럼 서로 협력해서 범죄자를 처벌하고 있는 거죠. 경찰은 수사를, 검찰은 기소를 담당하며 완전히 분리된 독립기관인 셈입니다.
만약에 검사가 수사를 하게 되면 그 검사는 증인이 되기 때문에 공판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검사가 추가 수사를 요청할 수는 있지만, 경찰이 판단해서 필요 없거나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면 거부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검찰 드라마는 없고 경찰 드라마가 인기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처럼 검찰이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갖는 게 아니라 미국 검찰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한국에서 검사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것은 바로 수사권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검찰이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건 있을 수 없다. 경찰의 지휘권은 전적으로 그 주의 주지사에 있다. 미국에서 직접 수사권을 갖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하는 경찰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게 당연하다.

메릴랜드 몽고메리카운티의 경찰관들이 한국식 바비큐 전문점에서 식사를 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방 정부에는 경찰 없어
연방도 마찬가지다. 미국 연방법에 연방 정부는 경찰을 둘 수 없도록 규정해 놓았다. 그래서 연방 정부에는 공식적인 경찰이 없다.
다만 법무무 소속의 연방수사국(FBI)이 경찰 역할을 실제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FBI도 경찰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즉 연방수사국이다.
연방수사국 직원들도 경찰이라 하지 않는다. 에이전트(Agent)라고 부른다. 요원이란 뜻이다. 아무리 FBI라 하지만 역시 기소권이 없다. 수사권만 있을 뿐이다.
연방에서 기소권은 법무부 산하에 지역별로 연방 검사들이 있어 이들이 행사한다.
한국의 경우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처럼 수사는 경찰이 담당하게 하고, 검찰은 기소와 공소유지 업무만 맡도록 하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늘 현안이 되어 왔다.
그러나 검찰의 반발로 수사권 독립의 문제는 좀처럼 진전이 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