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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국칼럼

강남중 기자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이용수 할머니와 박근혜의 워싱턴 회동

2007년 2월15일 미 하원에서는 의미 있는 청문회가 열렸다. 바로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일본의 만행을 생생하게 듣는 역사적인 행사였다.

이 청문회를 위해 한국에서는 이용수 할머니와 김군자 할머니가 참석했으며 네덜란드계 얜 러프 오헤른 할머니(당시 84세)도 씻을 수 없는 아픈 기억들을 토해내며 일본의 사과를 촉구했다.

왼쪽부터 이용수 할머니, 김군자 할머니, 얜 러프 오헤른 할머니.

그날 저녁 할머니들은 워싱턴정신대대책위원회가 팰리스 식당에서 마련한 한인 간담회에도 참석해 일본의 만행을 동포들에게 알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권태면 주미대사관 총영사, 김은석 공사 참사관, 서옥자 정대위 회장을 비롯한 40여명의 동포들이 참석,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에 눈물을 적셨다.

특히 방미중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도 들러 할머니들을 격려했다. 그런데 이용수 할머니가 박 전 대표에 한 말이 묘한 관심을 끌었다. 이 글은 이용수 할머니와 박근혜 대표의 대화를 지켜보며 쓴 글이다.


박근혜 대표가 얜 러프 오헤른 할머니와 포옹하고 있다.

“어려운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이번(하원 청문회)이 여러분들의 응어리를 푸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15일 워싱턴 정신대 대책위가 마련한 간담회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강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손을 잡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박근혜 대표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방미중인 박 전 대표는 ‘바쁜 일정’에도 이날 오후 열린 하원 청문회장에도 모습을 나타내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박 전 대표의 호의에 이용수 할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반드시 우리의 한을 풀어낼 것입니다. (박 전 대표의) 아버지가 못한 것을 박 선생이 해주십시오. 그래야 우리나라가 삽니다.”

박 대표와 이용수 할머니가 악수를 하고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정치적 존재일 것이다.

일본은 박 대통령 시절 식민지 지배에 대한 각종 유무상의 차관 지불을 했으므로 민간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의 배상은 곤란하다는 논리를 펴오고 있다.


이 할머니와 박 대표가 악수를 하며 대화를 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잘못이 정신대 문제 해결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인 것이다.

“아버지가 못한 것을 해달라”는 이 할머니의 쓴 소리에 박 전 대표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짐작할 수 없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위안부 할머니 간담회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다만 인혁당 사건의 무죄판결에 대해 “내가 사과할 문제가 아니다. 역사가 판단할 문제”라고 공박하던 그의 모습에서 아버지 시대의 과오는 조금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효심 깊은 딸’의 표정만 읽힐 뿐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시대를 옹호하고 싶은 그의 진의를 이해못할 바는 아니나 역사에서 무엇이 그르고 옳은지 분별력 없이 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지도자로 바로 설 수는 없다.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일본이 그래도 이웃나라인데 감정적으로만 대하고 싶지 않다”는 이용수 할머니와 박 전 대표의 역사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갭은 박근혜 전 대표가 뛰어넘어야 할 곤혹스런 장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