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죽어야 사는 역설적인 진리

역설(逆說, paradox)이란 표면적으로는 모순적이고 불합리하지만, 그 속에 진실을 담고 있는 말로서, ‘소리 없는 아우성’, '찬란한 슬픔', ‘고난의 축복’, '작은 거인'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교훈 중에는 역설적인 진리가 참 많이 있습니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태복음 20:26-27),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마가복음 8:35),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마태복음 20:16).
우리는 지난 주일을 부활주일로 지키며 예수님의 부활을 기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부활의 전제는 죽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란 말조차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일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죠?”라고 묻자 한 학생이 “죽어야 합니다”라고 엉뚱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주님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23-25)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리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한 알이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은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이 죽음을 영광이라는 단어와 결부시켜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밀알의 죽음’은 십자가의 죽음이요, ‘영광’은 부활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말이 ‘No cross, no crown!’입니다. “고난의 십자가 없이는 영광스러운 면류관도 없다”는 뜻입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를 개척한 윌리엄 펜(William Penn)은 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명언은 “No pain, no palm; no thorns, no throne; no gall, no glory; no cross, no crown.”입니다. 의미를 덧붙여 풀이해보자면, 대충 이런 뜻입니다. “고통 없이는 (종려나무로 상징되는) 승리가 없고,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 없이는 (영광스러운) 왕좌도 없으며, 쓰디쓴 쓸개즙을 맛보지 않고는 영광을 얻을 수 없으며, 십자가 없이는 (부활의) 면류관도 없다.”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N0 pain, no gain”도 같은 맥락의 말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Yellowstone National Park를 여행하던 중이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여행을 하던 어린 딸이 길 건너편 분화구에 마치 수십 개의 노란 계란 프라이처럼 올록볼록하게 솟아있는 광경을 보러 가자고 조르자 아빠가 피곤했던지 그냥 지나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린 딸이 “Dad, don’t you know ‘no pain, no gain’?”이라고 또렷하게 말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우리는 자칫 심고 가꾸는 수고는 하지 않고 그저 열매만 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설교에서 가끔 인용했던 말 중에 “No sweat, no sweet.”라는 말이 있습니다. 땀 흘려 수고하지 않으면 달콤한 휴식도 없다는 뜻입니다.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하고 이레째 되는 날에 안식하라는 십계명을 상기시켜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저는 순서를 뒤집어 “No sweet, no sweat.”도 한 번쯤 그 의미를 새겨봄직하다고 하면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Sweet Home’이 없으면 직장에서 땀흘리며 열심히 일할 의욕도 없다는 식으로 언어유희(?)를 해본 적도 있습니다.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부활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울러 죽음에도 천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이패밀리 대표로 가정사역을 주도하면서 청란교회를 개척해 담임하고 있는 송길원 목사님은 올해 고난주간을 지나면서 어느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의 산 소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진정 죽음을 묵상하기 위해 무덤을 찾아보고 때로는 무덤을 바라보면서 ‘무덤 멍’ 때리기를 해볼 것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무덤은 우리가 필멸자(必滅者)임을 깨우쳐주면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의 메시지를 각인시켜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죽음과 관련해 새로운 시각을 배웠습니다. 이른바 ‘1인칭 죽음론’입니다. 우리는 ‘너의 죽음’과 ‘그들의 죽음’ 즉 ‘3인칭 죽음’과 ‘2인층 죽음’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대면하기를 꺼리거나 짐짓 외면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유행하는 죠크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피할 수 없는 게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죽음이요 다른 하나는 세금이다.”라는 죠크입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빙자해 세금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죠크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삶 그 자체는 이미 죽음을 껴안고 있습니다. 생과 사, 그것은 너무나 밀접하게 서로 포개져 있습니다. 동양인들은 숫자 4가 죽을 사(死)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짐짓 기피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죽음이 절대로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음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7:4에서는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종 환자와 그 가족에게 심적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의료시스템이 제공되고, 임종 환자의 통증을 덜어주는 시스템이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평가한 수치를 ‘죽음의 질 지수(Quality of Death Index)'라고 하는데, 한국의 경우는 OECD 국가들 중에서 맨 꼴찌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품위있는 죽음, 준비된 죽음,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웰다잉(Well-dying) 문화운동이 널리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의 입장에서 볼 때, 잘 죽기 위해서 꼭 갖춰야 할 것은 부활신앙입니다. 죽어도 다시 살며, 그것도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 신령한 몸(spiritual body)으로 다시 살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질 때 우리는 죽음 앞에서 보다 침착하고 당당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고린도후서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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