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생명과 부활

흔히들 기독교를 가리켜 ‘사랑의 종교’ 또는 ‘박애와 자비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과 박애와 자비는 기독교만의 특징이 아닙니다. 모슬렘교도 사랑을 강조하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불교도 자비를 강조하는데 그것도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 중에서 첫 번째 덕목인 인은 측은지심으로서 박애의 정신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계 4대 종교가 모두 동일한 덕목들을 내세우고 있으니 이것이 기독교만의 특징이라고 내세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를 다른 종교들과 확연하게 차별화하는 특징이 무엇일까요? 다시 말해서, 다른 종교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기독교만의 고유한 특징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단연코 ‘생명’이 기독교의 특징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생명이 기독교의 핵심 단어(Key Word)입니다. 다른 종교들도 나름대로 생명에 관해 말을 하지만, 그것은 다 실체가 없는 허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근거가 없는 한낱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진정한 생명을 말할 수 있는 종교입니다.
물론 기독교의 특징이 되는 생명은 일반적인 유한한 생명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을 중심으로 이 주제를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때로 그냥 ‘생명’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영생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6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생명이 바로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분의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아 영생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1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에 기적을 본 군중들은 억지로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의 왕으로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리를 피해 다시 혼자 산으로 가셨습니다. 아마도 기도하러 가셨겠죠? 그리고 얼마 후에 예수님을 찾던 군중들이 다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들이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인데, 이제는 썩을 양식을 구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을 구하라”고 하시면서 “내가 바로 영생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안에 영생한 생명이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 안에 숨겨있는 영생을 보고 계십니다. 예수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겉보기에는 조금도 다른 게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한 사람은 산 사람이요 한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골로새서 3:1-3)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영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다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안에 참 생명이 주어졌으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 감추어져 있는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현재 영적으로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장차 주님 다시 오실 때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은 생명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생명이 있으면 부활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과 부활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이제 봄이 되어 새 생명들이 약동하고 있습니다. 겨우내 죽은 듯이 보였던 산천초목이 파릇파릇 새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생명의 신비로움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계절입니다.
(요한복음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Happy E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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