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히브리서는 흔히들 ‘신약의 레위기’라고 일컬어집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를 이해하려면 레위기, 특히 성전 제사와 관련된 내용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죄를 속하기 위해 소나 양이나 염소와 같은 짐승을 희생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물 희생제사가 우리의 죄를 온전히 씻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제사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형이요 그림자였습니다. 모형과 그림자는 실체를 미리 보여주기 때문에 예표(豫表)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그 보혈의 공로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죄를 온전히 씻어주실 것을 미리 보여주는 의식이 구약의 제사였습니다. 죄인은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담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도 제사드리는 자를 대신해서 희생당하는 짐승은 반드시 흠이 없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장차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인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실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은 레위 지파 출신이었는데,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제사장이 바뀌게 될 뿐만 아니라, 매년 드리는 제사도 영구적인 효력이 없기 때문에 해마다 반복해서 드려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다 지파로서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반차(order)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자기 몸을 온전한 제물로 드려 ‘단번에’(once for all; 헬라어 hapax) 제사를 완성하심으로써 구약의 제사에 마침표를 찍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0:10-14)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이어서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연결됩니다.
(히브리서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누가복음 24:45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던 순간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 한가운데가 찢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커튼입니다. 유대 랍비 문헌에 의하면, 이 휘장의 두께가 약 20cm 정도여서 힘센 황소 두 마리가 양쪽에서 잡아당겨도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쫙 찢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아니고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이렇게 찢어졌다는 사실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휘장을 지나야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안치돼 있고, 법궤의 뚜껑을 속죄소(贖罪所)라고 합니다. 이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림으로 속죄를 받으며, 이곳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시기로 약속한 곳 즉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지성소에는 아무나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받기 위해 1년에 단 하루 ‘대속죄일’(大贖罪日)에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운명하시던 순간 성소와 지성소를 갈라놓은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휘장은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찢어지는 순간 휘장도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나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대면하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 길은 ‘새롭고 살 길’(a new and living way)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죄를 간과하지 않으시며, 따라서 죄인과는 절대로 상종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비록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희생제물의 피 없이 들어갔다가는 그 즉시 죽임을 당하는 매우 엄위한 곳입니다. 그래서 ‘지극히 거룩한 장소’라는 의미로 지성소(至聖所, Holy of Holies)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친히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누구든지 직접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는 말씀이 시사해주는 것은, 전에는 두려워서 감히 지성소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담력’(confidence)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틴 루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다 제사장이다’라는 만인제사장설(萬人祭司長設)을 주장한 근거입니다.
(히브리서 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법궤의 뚜껑에 해당하는 속죄소는 우리의 죄를 속해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종 은혜를 베푸시는 좌소이므로 ‘시은좌’(施恩座,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 또는 은혜의 보좌’(Mercy Seat)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주저함 없이 ‘담대하게’(with confidence)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사정과 소원을 아뢸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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