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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예수님의 모형⑥: 인물



성경을 모형론적으로 해석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은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로마서 5장 14절입니다.

(로마서 5:12-19)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리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예표)’이라...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죄인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유전돼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어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아담과 예수님은 우리 인간에게 가져다준 결과에 있어서는 상반되지만 둘 다 대표라는 점에 있어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아담은 예수님의 표상이요 모형이며 예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대표성의 원리는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5-49)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生靈)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또한 어떠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느냐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기 위해 기록된 말씀입니다. 육체라고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썩고 말 육의 몸(natural body)이 있는가 하면 썩지 않을 신령한 몸(spiritual body)도 있다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육의 몸을 대표한다면, 마지막 아담 또는 둘째 아담인 예수님은 신령한 몸을 대표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비록 육신적으로 죽는다고 해도 그의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그래서 부활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담 이외에도 구약성경의 인물로서 예수님의 모형이 되는 자들을 몇 사람 더 열거한다면 다음 인물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주 칼럼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준 멜기세덱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자였습니다(히브리서 7:3).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는 왕인 동시에 제사장이었다는 점에서, 만왕의 왕이요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모형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란 뜻이요, 그는 또한 살렘이란 지역의 왕이었으니 ‘평화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니 의로우신 분이며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과 방불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반차 즉 레위 지파의 대제사장인 아론의 계열을 따르지 않고 왕의 지파인 유다 지파에 속한 큰 대제사장으로서 메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임을 히브리서는 또렷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억울한 모함을 받아 애매하게 고난을 당했지만 오히려 그들과 그들 가족들을 기근 중에 살려내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보디발의 아내의 어처구니 없는 모함으로 감옥살이를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킨 인물로서, 죄 없으신 분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과 영생의 길로 인도하신 예수님의 모형으로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요셉은 적어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는 흠을 찾아볼 수 없는 인물로서 예수님의 생애와 성품에 부합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삭은 자신의 죄와는 상관없이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려질 위기에 처했지만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이 예수님을 연상케 하며, 마침내 여호와 이레의 은혜로 죽을 목숨이 다시 살아남으로써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하는 인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학자들이 흔히 ‘원복음’(origianl Gospel)이라 일컫는 창세기 3:15에 등장하는 ‘여자의 후손’은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시고(갈라디아서 4:4), 십자가에서 돌아가게 하심으로 사탄의 최대 무기인 죄와 죽음을 소멸하심으로써 죄인인 인류를 대속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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